겨울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얼마간 더 춥겠지만, 그래도 계절은 어김없이 제 갈 길을 하고, 제 올 길을 온다.

 

겨울이면 늘 생각나는 시가 있다. 안도현의 시들... 특히 연탄에 관한 시들.

 

그의 시 중에 너무도 유명한, 그래서 사람들이 제목을 잘못 알고 있기도 한 (주로 시의 첫구절을 따서 '연탄재'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

 

이 시의 출처를 잘 모르고 있었다. 찾으려면 찾을 수 있었겠지만, 너무도 잘 알려져서 그러려니 하고 그냥 넘어갔던 시였는데...

 

헌책방에서 안도현의 "외롭고 높고 쓸쓸한'이라는 백석의 시 구절을 따온 시집을 보고, 책장을 넘겼을 때, 이 시가 처음에 실려 있는 것을 보고, 어라? 이 시가 이 시집에 있는 거였서 하게 되었고, 이 시집이 시집인지, 시선집인지 다시 한 번 살피고...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외롭고 높고 쓸쓸한, 문학동네. 2000년 1판 25쇄. 13쪽

 

시집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와, 여기에 있었구나, 이 시가... 곧 '연탄 한 장'이란 시가 다음에 있는 것을 보고, 연탄에 관한 안도현의 시가 이 시집에 많이 실렸구나... 기쁜 마음.

 

망설임 없이 시집이 내 품으로 오게 하고... 주욱 읽어가는데... 읽어가면서 안도현의 어려웠던 시절이 이 시집에 고스란히 실려 있음을...

 

그래서 그가 이렇게 연탄에 대해 시를 쓸 수 있었음을...

 

안도현이 전교조에 가입했다가 해직된 해직교사 출신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알고 있겠지만, 지금은 너무도 유명해지고, 교과서에도 그의 시가 실리고, 이젠 교사가 아닌 교수로 지내고 있게 된 그의 과거에는 거리로 쫓겨난 교사 생활.

 

그로 인한 어려움들이 많았을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런 어려움들이 이 시집 곳곳에서 시로 나오고, 안도현의 자전적인 요소들이 이 시집에 시로 실려 있기도 하니... 그의 과거를 알고 싶으면 이 시집을 읽으면 좋을 것이다.

 

(물론 자서전처럼 자세히 쓰여 있지 않고, 시로 표현되어 있기에... 많은 것을 유추와 상상으로 채워넣어야 하지만... 특히 이 시집에서 '집'(43-49쪽)과 '학교로 가는 길'(82-85쪽)은 그의 유년시절과 청년, 어른이 된 시절을 모두 상상하게 해주는 시이다.)

 

그럼에도 이 시집의 백미는 역시 '연탄 한 장'이다. 읽을수록 따스해지는 시. 그 온기가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시. 그리고 그렇게 온기를 남에게도 전달하고 싶어지는 시.

 

연탄 한 장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물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안도현, 외롭고 높고 쓸쓸한, 문학동네. 2000년 1판 25쇄. 14-1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