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음.
무엇인가를 떨쳐냄. 아니, 있어서는 안 될 것을 힘을 통해 없애려는 행위. 이 정도. 그렇다면 씻기 위해서는 보아야 한다. 알아야 한다. 무엇이 불필요한 것인지를. 무엇이 추한 것인지를.
제대로 보지 않고, 알지 못하면 결코 씻지 못한다. 또한 의지가 없어도. 보고 알아도 의지가 없이 그냥 받아들이면 씻지 않는다. 적당한 힘이 가해지지 않아도 씻져지지 않는다.
씻는 행위에는 본다는 것, 안다는 것, 그리고 적당한 힘의 의지가 행동을 수반해야 한다는 것이 모두 함께 한다. 참으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실천 행위이다. 이것이 바로 '씻음'이다.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 연일 말들이 많다. 합의를 했다고 하는데, 일본과 우리가 그 합의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아니, 애초부터 다른 말들로 합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제대로 보지 않고, 알려고 하지 않고, 적당한 힘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합의는 그냥 얼룩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것은 결코 씻겨지지 않는다. 서로가 제대로 씻으려고 하지 않으므로.
헌책방에 들러 온갖 늙어가는 책냄새를 맡으며 이 책 저 책 구경을 하다, 김정환의 시집을 보게 되었다. 집에 김정환의 시집이 몇 권 있었던가? 그의 시가 참 직설적이라는 생각. 이 책이 85년에 나온 시집이니 민중성이 상당히 강한 시집이겠구나 싶기도 했는데...
87년을 전후로 민주화 이전과 이후로 나누거나, 또는 국민의정부를 기준으로 민주화 이전과 이후로 나누거나 하기도 하는데... 이 시집은 어느 기준으로 나누어도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전의 시집이니... 당시 고통스런 현실에 대한 고발과 같은 시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읽어보니, 그렇기도 하고. 그렇다면 이미 때가 지난 시들? 아니, 시들은 그 시대를 대표하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보편적 감성을 대변하기도 하니, 지금 읽어도 좋은 시들이 꽤 있다.
그 중에 하나, '씻음에 대하여'
도대체 제대로 씻어내지 못하면 어떻게 사회가 아름다워질 수 있겠는가. 우리는 과연 제대로 씻어낸 역사를 지니고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다.
꼭 사회라고 할 필요도 없다. 나 자신도 씻어낼 것들을 제대로 씻어냈는지... 씻어내기 위해서 정말 바로 보고, 알고, 실천했는지 반성하게 하는 시다.
이런 개인의 씻음을 사회로, 역사로, 국제 관계로 확장시키면 정말 우리는 제대로 씻어 본 적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
이 시를 읽고 정말 제대로 한 번 씻어 보자.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드는 정초다.
씻음에 대하여
아침 숲 속 안개
샘물에 얼굴을 씻으며, 씻겨져내리는 귓가에
보이는 것에 대한 그대의 자그마한 비명소리 듣는다
땀 흘리고 분노하고 사랑하는 것
그게 후줄그레한 씻음의 행위라고, 나는 말했지만
그대는 믿지 않았다. 세상은 참 더러워요.
추해요. 치사해요.
아침 한기 온몸에 소름
바닥에 바위와 풀잎이 투명한 샘물에 얼굴을 씻으며
입김이 호호 냇물 위로 서리는 그 속에서
그러나 나는 오늘 다시 깨닫는다
보이지 않느 것에 대한 따스한 믿음을
결코 포기할 수 없음을
얼굴을 씻고 가슴을 씻고
가슴에 묻은 사랑의 소금끼를 씻고
다시 사랑하기 위하여, 빼앗겼던 것을 씻듯이
내 가슴에 묻었던 그대의 얇은 가슴마저 씻으면서
근육에 배인 아픔만큼은
씻어내릴 수 없음을 다시 깨닫는다
그것은 정말 얼마나 벅차고 소중한가
추운 날 가난한 사람들의 입김이 그렇듯이
씻음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것들을 생각케 한다
어떤 갈 길 같은 것.
김정환, 좋은 꽃. 민음사. 1987년 중판. 11-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