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를 보았다. 2016년 1월 15일 영면. 이렇게 또 한 명의 지성이 우리 곁을 떠났다. 신영복 선생이 이제는 편히 쉬시길 바라며...

 

나의 대학시절

 

내가 신영복 선생의 글을 처음 접한 것은 아마도 이 글이리라. 물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많이 읽히고 있었지만, 나중에 읽어야지 하면서 뒤로 미루다 미루다 먼저 읽게 된 것이 "녹색평론"에 실렸던 (정확히 몇 호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의 대학시절'이라는 글이었다.

 

읽으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 고리키의 말을 인유해서 나의 대학시절이라고 했다지만, 그의 대학시절은 서울대 재학시절이 아닌, 감옥에서 지낸 시절을 말한 것이다.

 

지식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 배운 지식들보다 감옥이라는 그 폐쇄된 공간에서 그것도 사회에서 무지랭이라고 천대받고 멸시받고 경원시되던 사람들에게서 배웠다는 사실.

 

절절한 배움. 사람에 대한 예의, 그리고 관계에 대한 성찰이 그 글에 묻어 나 있었다. 참 좋은 글이라는 생각. 그리고 이렇게 감옥을 대학으로 여기면서 지냈던 사람이라면 참 좋은 사람이겠구나 하는 생각.

 

나무야 나무야

 

짧은 여행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엽서 책. 한 편 한 편의 글에서 성찰의 결과가 느껴지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다. 특히 이 책에 실려 있는 글 중에서 '반구정과 압구정'.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갑니다'는 아직도 머리 속에 남아 있다.

 

갈매기와 함께 한다는 이름을 지닌 두 정자. 반구정과 압구정. 하나는 청백리로 소문난 황희 정승이 세운 정자고, 다른 하나는 모사꾼으로 유명한 한명회가 세운 정자.

 

지금 어느 정자가 남아 있는가? 반구정인가, 압구정인가? 압구정은 이름만 남아 있다. 강남의 화려함을 대변하는 동네로. 하지만 반구정은 지금도 임진강 가에 서 있어 갈매기들을 벗할 수가 있다.

 

비록 분단으로 인한 철책선이 강을 가로 막고 있기는 하지만...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어떤 삶이 바람직한 삶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두 정자 이야기.

 

여기에 편한 길을 놓아두고 어려운 길을 간 사람, 그런 사람들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평강공주와 온달이야기를 다룬 글이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궈갑니다'였다.

 

어리석은 자, 요즘 말로 하면 '바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바보'들... 우리가 얼마나 존경하고 따르고 있는지... 우리나라에서 바보로 불리는 사람들이 몇 있다는 것. 그들에게 이 '바보'란 말은 경멸의 말이 아니라 존경의 말이라는 것.

 

강의

 

긴 감옥 생활. 대학시절이라고 이름 붙였듯이 사람들을 만나 인생 공부를 할 수도 있었지만, 많은 시간 동안 신영복 선생은 어렸을 적 할아버지에게 배웠던 옛 학문을 다시 공부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낸다.

 

동양사상을 정리한 책. 강의.

 

소위 제자백가에 해당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고 있어서, 동양사상을 아는데 많은 도움이 된 책이었다.

 

이런 '강의'가 예전 학문에 대한 지식을 펼치는데 있지 않다. 우리가 예전 학문을 배우는 이유는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한 과정이다.

 

그래서 이 책은 '온고지신'이라는 말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옛것을 익혀서 새것을 알게 되는 그런 책이었다.

 

최근에 책을 내셨는데...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 아직 읽지 못하고 있는 중.

 

쇠귀체

 

이제 그는 우리 곁을 떠났다. 철학적인 용어로 하면 인식론, 존재론을 넘어 이제는 관계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하던 그.

 

감옥에서 목수 출신의 죄수가 집을 그리는 모습을 보고 크게 깨달았다는 그. 흔히 집을 우리는 지붕부터 그리지만 목수는, 직접 집을 지어왔던 사람들은 기초부터 그린다는 사실. 이렇게 우리 인생은 기초부터,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함을 말했던 지성인.

 

그는 떠났지만, 우리에게 글씨를 남겨주었다. 일명 쇠귀체. 한 글자 한 글자를 떼어놓고 보면 무언가 균형이 잡히지 않은 모습, 그리 잘썼다고 할 수 없는 글자지만, 이 글자들이 모이면 서로가 서로를 받쳐 아름다운 글자로 존재하는.

 

우리들도 그래야 한다는. 사람은 더불어 살 때 그 빛을 발휘할 수 있음을 글자로도 보여준 그 분의 쇠귀체. 우리나라 사람이 많이 먹는 술, 소주에도 그 글씨가 쓰여 있으니...

그래,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렇게 서로 어울리면서 더 좋은 세상을 향해 기초부터, 어리석게 묵묵히 살아가야겠지.

 

그것이 우리 시대 지성을 보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겠지.

 

고 신영복 선생님. 하늘에서 우리들이 어떻게 관계 맺으며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지 잘 지켜봐주시길...

 

고인의 명복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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