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이 먹어갈수록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아지는지, 아니면 잃을 것만 있어서 그런지 자기 것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육체적인 나이로 말하기는 좀 뭣하지만, 젊어서는 진보이더라도 늙어서는 보수가 되는, 그래서 자신이 살아온 것들을 지키려고만 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쉽다.

 

그렇다면 정치는 누가 해야 하나? 우리나라 정치인들 중에 젊은사람이 있던가. 육체적인 나이말고, 정신적인 나이로 따지만 젊음이 우리나라 정치에 있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모두가 자기 것만 지키려고 한다. 그들은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서 더욱 강해지고, 더욱 단단해지고, 더욱 막혀진다.

 

옛날 옛날 아주 옛날 고려적 시절에는 노인들을 갖다 버리는 풍습이 있어서, 일명 고려장이라고 했다던데... 이런 무지막지한 풍습이 없어지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노인들의 지혜라고 하던데...

 

지혜는 강할 때 강하고 부드러울 때 부드러운 것, 버릴 것은 버리고 지킬 것은 지킬 것. 무엇보다도 버려야 할 것과 지킬 것을 구분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을 살아온 노인의 지혜이고, 정치를 나이 든 사람들이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런 지혜가 없이 오로지 자기 것만 고수하면 그들은 나이 먹을수록 부드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나이 먹을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것이다. 단단해지는 것은 부러지기 쉬운 법.

 

그럼에도 젊음은 좋다. 하지만 젊음에만 머무를 수는 없다. 늙음을 받아들이고, 한때 내 젊음에는 이랬었지 하는 것까지는 좋다.

 

그 다음에는 늙어가면서 부드러워지는 일이다. 한없이... 다른 것들을 받아들이면서, 그래서 자신이 자신의 늙음에도 다리 걸려 넘어질 수 있음을 알고 행동하는 것.

 

젊음을 위해 자리를 비켜줄 줄 아는 것. 그런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늙었음에도 늙은 줄 모르고, 한참 젊은 줄만 아는 모양이다. 자신들의 늙음을 인정하지 않으니...

 

심보선의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를 읽다가 문득, 이런 늙음과 정치가 생각났다.

 

그의 시 전문을 보자. 

 

 

한때 황금 전봇대의 생을 질투하였다

 

시간이 매일 그의 얼굴을

조금씩 구겨놓고 지나간다

이렇게 매일 구겨지다보면

언젠가는 죽음의 밑을 잘 닦을 수 있게 되겠지

 

크리넥스 티슈처럼, 기막히게 부드러워져서

 

시간이 매일 그의 눈가에

주름살을 부비트랩처럼 깔아놓고 지나간다

거기 걸려 넘어지면

 

끔찍하여라, 노을 지는 어떤 초저녁에는

 

지평선에 머무른 황금 전봇대의 생을

멀리 질투하기도 하였는데

 

심보선,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문학과지성사, 2011년 초판 11쇄. 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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