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캐릭터들로 보는 현실 풍자 소설

지구영웅전설 - 제8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6월

자고로 소설은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없는 소설은 아무리 문학성이 있어도 읽히지 않는다. 읽히지 않는 소설, 문학사에 이름이 남으면 무엇하나?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하는데...

이 점에서 박민규의 소설은 재미있다. 그래서 읽힌다. 그것도 한 번에 주욱. 그의 소설을 손에 잡으면 다 읽을 때까지 놓기 힘들다.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 그의 소설에는 있다. 적어도 내가 읽은 두 편의 소설은 그랬다. 처음에 읽은 그의 소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야구를 좋아하는 나에게 딱 맞는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동시대를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로 다가와서일까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게다가 소설을 위한 잡지를 표방한 'AXT' 두 번째 권의 표지 작가로 박민규가 나왔다. 그러니 그의 소설을 구해서 읽을 수밖에.

도서관에 가서 그의 소설을 찾아보는데... 제목이 재미있는 작품이 있다. "지구영웅전설"이라니...

제목에서 만화 냄새가 풀풀난다. 목차를 보니, 이거야 원,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아쿠아맨이 나온다. 이거 완전 만환데...

읽어보니, 만화는 아니되, 만화의 형식을 흉내내고 있다고 볼 수 있고, 환상적인데, 무언가 자꾸 우리 현실과 연결이 된다.

그냥 풍자소설이라고 해야 하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만화 속 주인공들을 등장시켜 지금 우리 시대를 재구성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이 소설에서 풍자하고 있는 내용이 우리나라야, 미국이야 하는 생각이 드는데... 결국 미국을 추종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바나나맨'에 비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겉은 노랗지만, 속은 하얀, 마치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을 연상시키는 이름이다. 그는 슈퍼맨에 의해 구출되어(이거 일제로부터 벗어나게 해준 미국을 연상시킨다) 그를 추종하고, 그들과 같이 영웅이 되고자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

슈퍼맨은 무력으로, 배트맨은 자본으로, 원더우먼은 성(섹스)으로, 그리고 아쿠아맨은 온갖 협정으로 세계를 옭아매고 있음을 소설을 읽다보면 알 수 있는데, 이는 등장인물들이 상징하고 있는 바를 직설적으로 보여주고,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풍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채만식의 소설에 나타나는 어리석은 서술자처럼, 어리숙한 서술자로 인해 그 서술자가 주장하고 있는 내용이 올바르지 않음을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여러 장치들에도 불구하고, 친숙한 등장인물들이 나온다는 데서 우선 재미를 느낄 수 있고, 장면의 전환이 만화가 전개되듯이 박진감있게 펼쳐저 읽기에도 편하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미국만 추종하는 바나나맨의 모습을 지금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자신이 천대를 받으면서도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바나나맨의 모습은 지금, 우리를 다시 되돌아보게 하고 있다는 점.

이 소설이 2003년에 나왔지만, 이 소설 속 모습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지금-여기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