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없는 나라 -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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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게 되는 소설이다. 표현력이든, 주제든, 인물이든 그런 것을 넘어서 소설 속의 현실이 자꾸만 현재를 불러내기 때문이다.

 

동학혁명, 또는 동학농민운동 또는 동학동민전쟁, 갑오농민전쟁이라고 불리는 갑오년 민중들의 외침. 그들이 꿈꾸었던 나라.

 

그것은 누군가가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라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며 사는 나라였다. 스스로 자신들의 삶을 꾸리는, 서로가 서로를 돕고 존중하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나라.

 

누군가가 힘없는 사람을 핍박하지 않고 수탈하지 않고, 외세를 등에 업고 권력을 잡으려 하지 않고, 그냥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나라.

 

평등. 그것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고, 이들이 꿈꾸던 나라였다.

 

그러나 이들이 꿈꾸던 나라는 힘없는 백성들이 꿈꾸던 나라, 말 그대로 '유토피아'였고, 그곳에 당도하기 위해서는 너무도 험난한 고개를 넘어야 했다. 넘고 넘어도 고개는 계속 앞에 나타나고, 고개를 넘지 못하게 방해하는 세력도 있는데...

 

그럼에도 이들은 재를 넘어야 했다. 고개를 넘지 못하고 중간에 스러지더라도 이들은 이미 고개 '너머'를 보았기에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한 고개를 넘어 고개 '너머'를 살아본 사람들은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 자리에 주저앉지 않는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들은 고개를 넘어가려고 한다. 그 고개 '너머'를 향해. 그것이 바로 동학과 관련된 갑오년 싸움이었다.

 

이들은 이미 다른 세상을 보았고, 다른 삶을 살았다. 그것이 곧 농민들만이 아니라, 세상을 제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길이었다. 반상의 구별이 있을 수가 없다.

 

이 소설이 더 의미가 있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전봉준을 비롯한 농민들만이 아니라, 중앙에 있던 젊은 관리, 그리고 지방에 있는 관리들 중에서도 세상이 잘못되었음을, 그 잘못을 바로잡아야 함을 알고 실천한 사람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지점.

 

이철래로 대표되는 강직한 젊은 관리... 그는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기 위해 동학군에 가담하고, 결국 목숨을 잃지만, 그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의 목숨이 끊어지는 장면에서 그가 한 말.

 

"백성들은 장하였소. 그들을 배신하지 마시오. 변절하지 마시오." (308쪽)

 

이것은 그가 비록 목숨을 잃지만 출세의 길을 버렸지만, 그가 바라는 나라는 백성들에게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비록 갑오년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하지만, 실패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리들을 소홀히 하지 않고 농민들과 함께 다뤄주고 있는 점이 이 소설의 미덕이라고 할 수 있고, 갑오년의 운동이 끝나지 않았음을 '을개'의 아이를 낳은 '갑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 아이의 이름이 바로 '도치', 도끼임을, 세상을 벼리는 도끼가 사라지지 않았음을, 그런 정신이 계승되고 있음을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인 전봉준을 비롯해 소설 속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 동학에 관한, 또는 갑오농민전쟁에 관한 그 어떤 역사책보다도 더 그 당시를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있는 소설이다.

 

또한 아직도 그들이 걸어간 길이 끝나지 않았음을, 마지막 을개와 전봉준의 대사로 여겨지는 말을 통해 우리 앞에는 아직도 고개가 있음을, 우리는 아직도 고개 '너머'에 도착하지 않았음을 생각하게 된다.

 

"선생님, 저 재를 넘으면 무엇이 있습니까요?"

"몰라서 묻는 게냐? 우리는 이미 재를 넘었느니라. 게서 보고 겪은 모든 것이 재 너머에 있던 것들이다."

"그럼 이제 끝난 것입니까?"

"아니다. 재는 또 있다."

"그럼 그건 어쩝니까요?"

"그냥 두어도 좋다. 뒷날의 사람들이 다시 넘을 것이다. 우린 우리의 재를 넘었을 뿐. 길이 멀다. 가자꾸나." (345-346쪽)

 

그래, 우리도 우리의 고개가 있다. 그 '재'를 넘어 고개 '너머'로 우리는 나아가야 한다. 이미 우리는 고개 '너머'를 경험하지 않았던가. 돌이킬 수 없는 경험을 우리도 역사를 통하여 해오지 않았던가.

 

우리 이 소설 속에 나오는 또 다른 '도치'들일테니 말이다.

 

덧글

 

서평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책이다. 너무도 고맙게도 이렇게 좋은 소설을 읽을 기회를 얻게 되다니...출판사에 감사를 표한다.

 

작가의 말에도 나와 있지만, 이 소설의 내용은 백 년이 지난 과거의 일이 아니다. 지금 현재, 우리의 일이다. 우리는 아직도 '재'를 남겨두고 있다. 넘어야 할, 우리가 가야할 고개 '너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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