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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바꾸는 아티스트
지승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1. 짧았던 한희의 순간을 되돌아 보게 하다
이 책은 주로 2003년에 이루어진 인터뷰들에 대한 기록이다. 2003년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희망과 무언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전조를 느끼게 해준 해이다. 이 책에 나와 있는 시기는 2003년 초반이니... 고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부터 취임을 한 직후까지의 일이다.
희망은 '사람다운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노무현이 당선된 일이다. 그때 우리들은 국민의 정부를 이어 우리나라의 실질적인 민주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낙관했다.
정치, 경제, 언론, 사법 부분의 개혁이 이루어질 거라고, 그렇게 순탄하게 우리나라는 순항할 거라는 희망이 있던 시대였다.
여기에 살짝 불안감을 던져준 것은 효순, 미선의 참사로 인한 촛불시위에 대한 당선자의 말이었다. 자제를 부탁하는 그 말... 그 말에 대한 각계의 반응, 또는 이 책에 나와 있는 사람들의 반응으로 희망 속에서 일말의 불안감이 포착되고 있다.
사회가 일 개인에 의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노력에 의해서, 그것도 부단한 노력에 의해서만이 바뀔 수 있음을, 어쩌면 우리는 대통령을 바꾼 그 때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온 대담들이 꼭 긍정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2.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공화국의 시민은 모두 정치의식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 책의 기본 관점이 바로 이것이다. 연예인이 정치에 참여하면 뉴스가 되는 나라. 이런 나라는 후진적인 나라다. 우리나라 헌법에 의하면 누구나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참여해야가 아니라 참여해야만 한다.
단지 투표하는 것만으로 정치에 참여한다고 해서는 안된다. 자연스럽게 자신이 정치적 견해를 밝히고, 이런 견해들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민주공화국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연예인의 정치 참여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있다. 지금부터 12년 전, 그때는 더했다. 딴따라들이 무얼 아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자신이 출세하기 위해서 줄서고 있닥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동등한 시민으로 대해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책에 나온 사람들은 자신들의 정치 의식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이것은 용기일까?
민주공화국이라면 당연했을 일이 당연하지 않고 용기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던 시대, 그것이 겨우 12년 전이다. 지금은 좀 나아졌을라나?
하지만 시민은 누구나 자신이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민주공화국이다. 그리고 그런 시민들의 정치의식을 대변하는 것이 정당이다. 정당이 먼저고, 시민이 나중이 아니다. 시민들의 정치의식을 조직화 한 것이 정당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지금 정당들은 시민들의 정치의식을 자신들의 정당이념으로 삼고 있는가? 무려 12년이 지났는데... 우리는 제자리 걸음을, 어쩌면 뒷걸음질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3. 인터뷰는 '사람책'을 읽는 일이다
'사람책 읽기'라는 말을 듣고 기발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몇몇 도서관에서 하는 행사였는데.. 책이 꼭 문자로 된, 종이에 기록되어 묶인 것만을 의미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
한 사람이 살아온 내력, 그 사람의 생각들을 함께 이야기하면 그것이 자연스럽게 책이지 않나 하는 생각에 '사람책 읽기'라는 것이 생겨났으리라.
그렇다면 이런 인터뷰는 두 가지 역할을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진짜 책으로서의 역할과 또 하나는 사람을 비록 직접 대면하지는 않지만 그 사람을 읽어내는 '사람책'의 역할을 말이다.
특히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읽어내게 하고 있으니...
시간이 좀 지났어도 괜찮다. 책이란 본래 당대에 유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시간이 지난 다음에도 꾸준히 읽히고 있는 존재이니 말이다.
이 책에 나온 사람들의 인터뷰도 마찬가지다. 무려 12년전이다. 띠들이 한바퀴 돌았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2003년에서 얼마나 벗어났을까?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를 규정하는 단초가 바로 이 때 시작되지 않았을까?
희망으로 출발했지만, 그 출발에서부터 삐끄덕거리는 모습을 감지한 '사람책'들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그 희망의 봉우리에서 급속도로 떨어져 내리고 만 우리의 현실을 읽어낼 수 있다.
그 다음, 다시 희망의 봉우리를 오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이 '사람책'들을 통하여 찾아낼 수도 있고.
4. 그렇다면 어떤 '사람책'들이 있을까?
이 책에는 얘술가 중에서도(이 중에 연예인이라고 할 수 없는 문화비평가, 또는 음악평론가로 불리는 사람이 한 명 있다. 바로 강헌이다. 그러나 그도 한때는 다큐멘타리 영화를 만들었고, 평론은 예술이니...) 진보적인 정치적 성향을 드러냈던 예술가들을 만난 기록이다.
정치적인 성향에 진보와 보수 또 중도가 있다면 모든 사람들을 아울러 다뤘으면 좋았겠으나, 이 당시에는 진보가 소수였고, 보수는 이렇게 다루지 않아도 큰소리를 낼 수 있었으니...
또 인터뷰를 하는 사람의 정치적 성향도 있고 하니... 우리가 책을 읽을 때 모든 책을 다 읽지는 않듯이, 인터뷰 역시 자신의 이야기 듣고 싶은 사람을 골라 하는 것이니...
장봉군, 강헌, 박재동, 권해효, 김미화, 안치환, 정태춘, 박찬욱, 신해철
이들이다.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이도 있고, 잠시 대중의 눈에서 멀어진 사람도 있고, 고인이 된 사람도 있지만... 이들이 2003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 생각들이 어떻게 지금 받아들일 수 있는지 생각하면서 읽으면 좋다.
5.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용기있는 사람들이다
공식적으로 자기의 생각을, 삶을 드러내고 표명하기 때문이다. 내 생각을 공개한다는 것은 내가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의무를 지니게 된다.
이들의 행동이 이런 인터뷰를 통해 어느 정도는 제한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렇게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참으로 용기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용기는 바로 민주공화국의 시민이라면 갖추어야 할 덕목이고, 이런 덕목들이 우리나라 정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게 된다.
꼭 정치가 아니더라도, 이런 용기는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한다. 이런 용기있는 사람들... 칭찬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다.
2003년 희망으로 시작한 해... 지금은 2015년... 지금에서 그때를 바라보는 읽기를 하니, 감회가 새롭다. 그때 생각이 나기도 하고, 그동안 지나온 세월이 머리 속에 그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책을 읽는 일, 그래서 이 때를 기억하는 일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바로 바라보는 눈을 갖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 그런 노력은 꼭 필요하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