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길기도 하다. 입추도 지났고, 처서도 지났건만, 해는 아직도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와 있다. 이제는 해가 우리에게서 멀어져야 할 때인데...
더운 여름날, 여행을 간답시고 간 곳이 바로 철원.
궁예가 세운 태봉의 수도, 그러나 한 나라의 수도였다고 하기에는 문화재라는 것이 거의 없는 곳. 태봉이, 후고구려가 얼마 되지 않아 고려로 바뀌고, 궁예는 몰락의 길을 걸어서인가...
철원은 우리의 기억에 잘 남아 있지 않다. 옛 수도로써는 말이다.
그런 철원이 우리에게 다가온 것은 분단과 더불어 아니던가. 땅굴도 옛노동당사도 있는 곳.
자연은 아름다우나 인간에 의해서 자연이 아름다움보다는 분단의 비극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곳. 얼마 가지 않으면 철책선이 있고, 철책선 너머에는 또 하나의 우리가 있는 곳. 함께 하지 못하는.
철원 여행은 너무도 더웠다. 해가 쨍하고, 해를 피할 곳은 없고, 여기에 한탄강은 얼마 전 내린 비로 인해 흙탕물이었다. 누런 흙탕물. 맑게 흐르는 강을 기대하고 갔는데, 본 것은 탁한 물밖에 없었다. 마치 우리나라 역사처럼.
얼마 전에 갔다 온 철원이 생각난 것은 신대철의 시집을 읽다가 보게 된 '한탄강'이란 시 때문이었다.
1,2편, 두 편의 한탄강 시가 있는데... 이 시를 읽으며 철원 여행을 했을 때 뜻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분단의 현실을 한탄하고 있는 강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탄강 1
평야 깎아질러
벼랑 사이로 흐르는 한탄강
피난 행렬 속으로
신발 한짝 찾으러 간 아이
신발도 발목도 잃고
백발로 협곡으로 돌아와
빈 지게 어깨에 걸고
흙바람 품어 안고
강 건너 마실 간다
아이들 몰려가다 사라지고
수수밭 술렁거리다 사라지고
포대 진지 넘어
작대기 질질 끌린 길만 돌아온다
신대철, 누구인지 몰라도 그대를 사랑한다. 창비. 2005년. 초판. 47쪽.
아름다운 자연이 사람에 의해서 살기 힘든 곳으로 바뀐 곳. 서로 교류를 할 수 없도록 경계선이 처진 곳.
어쩌면 궁예가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도 유지하지 못한 역사적 사실이, 철원에, 이 한탄강에 스며들었는지... 전쟁 때는 격전지로,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지뢰 때문에 마음을 졸여야 하는 곳.
그러나 길이 있으매, 자연이 존재하매, 언젠가는 이 곳에서도 단절된 교류가 이루어지고, 서로 함께 웃으며 지낼 수가 있게 되겠지.
그때는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도 철원 여행이 즐거울 수가 있겠지. 그런 생각을 이 시를 읽으며 한다.
웃으면서 과거를 이야기할 때가 오겠지. 그 때는 이 시가 예전엔 이랬었다는 것을 증언하겠지. 과거로만... 그렇게 되었으면, 그렇게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