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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디자인 ㅣ Design Culture Book
김지원 지음 / 지콜론북 / 2015년 5월
평점 :
이 책은 서울 구로구의 항동에 있는 철길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철길이 중심이 아니라, 오래된 그 철길 가에 무성하게 자라있는 세 잎 클로버들에 대한 이야기다.
세 잎 클로버 꽃말이 행복이라고 한다. 그리고 네 잎 클로버 꽃말은 행운이고. 이제는 관용어가 되다시피한 '행운을 찾기 위해 행복을 밟지 마라'는 말은, 네 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세 잎 클로버를 무시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태도를 비판하는 말이다.
그만큼 행복은 우리 도처에 널려 있는데, 우리는 그런 행복을 보지 못하고, 찾지도 않고, 짓밟고만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디자인에 관한 책인데, 세 잎 클로버로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디자인은 우리의 삶 도처에 있고, 그런 디자인은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우리와 함께 한다.
그런 디자인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순간, 그 순간 행복은 우리에게 다가오고, 디자인이 우리 곁에 행복으로 늘 함께 했구나 하는 점을 느낄 수가 있게 된다. 그것이 새로운 디자인이건, 오래된 디자인이건...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 마음이 닿은 어딘가, 2장 삶의 마술지팡이, 3장 예기치 않은 위안, 4장 아름다움 너머의 가치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다.
1장은 바로 의자에서 시작한다. 의자, 우리가 늘 곁에 두고 있는 물건 아니던가. 우리의 몸을 쉬게 해주는 존재. 피로한 다리를 쉴 수 있게 해주는 존재. 우리보다는 두 개의 다리가 더 많은 존재. 그래서 저자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반려동물인 개하고 의자를 비교한다. 의자가 우리에게 다가오기 위해 세 다리를 버리고 네 다리로 존재하게 됐다는.
그렇다. 누가 의자에 대해서 생각하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의자 없이 지내고 있는가 생각해 보면 의자는 우리의 삶에 늘 우리와 함께 했다. 이런 의자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 자체가 바로 행복이다. 의자에 몸을 의지할 때 우리는 편안함과 행복을 느끼지 않는가. 이렇게 사소하지만 늘 우리 곁에 있는 것들, 신호등, 그리고 공간, 찻잔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1장이다.
2장에서는 카메라로 시작된다. 우리가 지금 쓰는 디지털 카메라가 아닌, 그렇다고 필름 카메라 중에서도 고급이 아닌, 아주 작은, 어떻게 찍힐지 예측하기 힘든, 그래서 더 재미있는 사진기. '로모그래피'라는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
사실, 이 카메라에 대해서는 처음 알게 됐다. 재미있는, 어쩌면 예측불가능성 때문에 우리 삶에 행복을 가져오는 그런 카메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재미있는 장난감, 캐릭터, 레고, 자연친화적인 자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3장에서는 공책, 판자촌, 헌책방 및 벼룩시장, 서체,도시풍경 스케치가 나온다. 특히, 공책. 이제는 사라져가는, 쓸모없어지는 대상으로 치부되고 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글씨를 도통 쓰지 않는다. 스마트폰에 글쓰기 기능이 있기도 하지만, 타자기능과 또 메모하기보다는 사진을 찍어서 영상으로 보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시대에 공책이라니... 그런데, 공책은 우리의 기억을 보관하는 특별한 저장소다. 자기만의 기억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보관하는 그런 디자인, 그것이 바로 공책이다. 이런 공책에 대한 이야기는 나와 같은 어른을 과거로 이끌어간다.
공책을 살 때의 기쁨, 그 공책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채워나가는 기쁨. 가끔 공책을 들춰보며 아, 그땐 내가 그랬구나 하고 기억을 되살리는 기쁨... 그런 기쁨을 전해주는 디자인, 공책. 정말 행복의 디자인이다. 다른 것들 역시 마찬가지고.
4장은 지속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 4장에서는 종이컵에 관한 이야기가 마음을 끈다. 지금은 환경오염 덩어리라고 쓰길 자제하자고 말하지만, 최초에는 사람의 건강을 위해서 디자인된 것이 바로 종이컵이라고.
이 종이컵은 우리나라에서는 촛불집회 때 참 많이도 쓰였지. 서로의 따뜻한 마음을 이어주는 역할, 그런 역할로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꾸려는 의지를 보이는 촛불을 감싸주는 역할을 하던 종이컵.
그렇다. 무조건 종이컵을 매도할 것이 아니라, 종이컵을 우리가 잘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하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행복의 디자인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읽으면서 눈도 즐겁고(사진들이 많으니) 마음도 즐겁다. 제목 그대로 행복의 디자인이다. 그냥 아무 장이나 펼쳐서 읽어도 된다. 굳이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없다. 아무 장이나 펼쳐 지금 자신이 놓치고 있는 행복을 찾아보자. 아니, 행복을 느껴보자. 그게 이 책이 주는 역할이다.
책의 편집 후기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아마도, 이 말이 이 책의 성격을 가장 잘 말해주고 있겠단 생각이 든다.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김지원 저자와 이 책에 대해 골몰하게 고민하고 상의하던 시기에 그에게서 받았던 질문이다. 아마도 당시의 난 그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대답할 수 있다. 행복은 기억이다. 사랑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 아이를 낳고 키우며 쌓인 기억. 힘든 시절을 함께 동고동락했던 동료와의 기억. 사람과 함께 한 기억들은 행복으로 쌓여있고 그것은 앞으로 살아갈 날의 에너지가 된다. 그리고 그 시간 안에서 말없이 우리들 곁에 존재하던 디자인. 디자인은 절대 자기 자신을 먼저 드러내지 않는다. 사람이 먼저 필요에 의해 손 내밀기 전까지는 말이다. 필요하면 꺼내쓰고, 그러나 무용해지면 버려지는 우리 곁의 수많은 사물들. 그것들은 말은 못하지만, 그 동안 사용해주어서 고마웠다고, 언제고 필요할 때면 꼭 다시 찾아봐달라고 한다. 말없는 친구와 같은 다지안, 그것이 바로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이다." (3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