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래.

 

 그의 시는 짧다. 단아하다.

 

 읽으면 입 속에서 말들이 부드럽게 굴러간다. 마치, 노래같다.

 

 시의 본질이 노래라면, 박용래 시는 거기에 충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읽기에 좋고, 읽으면서 입 속에서는 운율이, 머리 속으로는 그림이 그려지는 시들이다.

 

 여기에 그에게는 옥천에 관한 일화가 유명하니, 그것은 이문구에 대한 글에서 이야기를 했으니 그만하고. 그만큼 시에 관해서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고, 시인이었음에 시인으로 마을을 기억하는 사람이었다는데 그의 강점이 있다.

 

그의 시 중에 가장 유명한 '저녁눈'을 보자.

 

저 녁 눈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발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박용래, 먼 바다, 창작과비평사, 1994년 4쇄. 217쪽.

 

노래가락이 느껴지지 않는가. 거기에 느껴지는 편안함이란. 그냥 읽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늦은 저녁 내리는 눈이 여기저기 자신들이 있을 자리를 찾아 가는 모습. 한적한 마을에 눈이 찾아와 그 빈 공간을 채우는 모습. 그런 그림이 그려진다.

 

이제는 이렇게 한적하고 평화로운 마을을 찾기 힘들겠지만... 시를 통해서라도 위안을 얻어야 하지 않겠는가.

 

부산한 시대, 무언가 꽉 차 있는 듯한 느낌으로,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그것이 자연물일지라도 제 자리를 찾을 수 없는 시대. 그런 시대에 이렇게 눈발이 자기의 자리를 찾아 붐비는 이런 시... 이런 모습.

 

이 시에 나오는 눈발을 눈발로만 보지 말고, 우리 주변의 자연물로 바꿔보자. 그러면 눈발이 햇발이 될 수도 있고, 바람이 될 수도 있고, 구름이 될 수도 있고, 온갖 초록이 될 수도 있고, 또 이제는 단풍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잃어버린 무엇, 비움을 채울 수 있는 무엇, 비움과 채움이 함께 하는 장소, 그런 장소를 이제 우리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아님, 정말로 쓸모있는 말들이 우리들을 채우게 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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