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이 다가온다.
정치권에서는 무언가를 기념해야 하지 않냐고.
70주년 즈음해서 국민들의 화합과 우리나라의 도약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사면을 운운하고, 임시공휴일을 운운하고, 그리고...
이제는 일제강점기를 겪은 시기보다 두 배에 해당하는 기간을 보냈다. 일제 때 왜곡됐던 여러 일들이 바로잡히고, 우리는 그 때 일을 용서는 하되 기억을 하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만들었어야 했다.
그런데... 관연 그런가. 일본은 아직도 과거의 일을 제대로 사과하지 않아서 용서를 할 수가 없게 만들었으며, 한국사 교과서 문제에서 나타나듯이 우리들은 기억도 바르게 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무슨 말이 필요하랴... 시보다는 기행으로 더 많이 알려진 김관식의 이 시를 보자. 이 시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아마, 50-60년대쯤에 쓰여졌을 이 시가 지금도 유효하다면 그건 문제겠지...
이제 천하는
이제 천하는 어느 한 놈의 천하가 아니라 모름지기 천하의 천하인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난 이같이 증언한다.)
천하의 이를 뒤에 하는 자, 너 또한 천하를 얻을 것이고
천하의 이를 앞에 하는 자, 너 또한 천하를 잃을 것이다.
옛날 동양의 선한 지혜는
열 눈이 보고 열 손이 가리키니 무서웁다 했거니
신나무 잎 같은 너 하나의 가녈핀 손바닥을 가지고, 진실로 천하의 눈! 눈! 망자 뒤집혀 흰창만 남아 부릅뜬 눈! 분노의 새파란 새파란 화염이 타는 …… 저, 수수천만의 눈총들을 어찌 가리울 수 있겠는가.
송도적 불가사리는 그래도
(하, 그렇지 불가사리는 不可殺이지 둔갑장신하여 절대로 죽이지 못했으니까.)
무쇠만을 골라서 먹었다나 보던데
오늘의 불가사리는 찌락배기 황소라 아가리가 넓죽하여 하 그리 먹성이 좋은가. 그저 닥치는 대로 무소불식(無所不食)!!?
바다를 팔아먹고 사직공원 땅이고뭐고 심지어는 한강백사장!!!
「모래알로 떡해놓고 … 맛있게도 냠냠.」
허나 어디 그뿐이던가.
우리 선조로도 일찌기 두려운 몸부림에 발 들이지 못하던 오래인 성역.
부근(斧斤)이 한번도 닿은 일 없는 산꼭대기, 하늘 찌르는 아람드리 아람드리 거창한 나무, 벌목정정 산경유(山更幽) 아니라 고막 찢는 듯 소름끼치는 오비노꼬 마루노꼬 톱니바퀴 돌아가는 소리……
보라! 문명이 학살한 저 울창한 숲 속 크낙한 나무들의 시커면 시신들을……
워낙 굴헝이 응성싶고 풀떨기가 짓어야 날짐승 길짐승도 깃들이는데…… 불쌍한 새짐승들 삭막한 이 겨울밤 어데서 샐까. 지리산 가마귀떼 보리밭 고향으로 하야들 하시는가.
학정의 화가 드디어 금수에게 미친 것은 고사시하고 저 현현한 궁륭 어디에 오롯이 솟은 보좌 위에서의 신의 몽매조차 설치어 불안했으리로다.
나 본시 귀머거리도 당달봉사도 아니언마는
독재자! 독재자치고 베개에 바로 누워 고종명한 일을 듣지도 보지도 못하였노라.
동포여, 일어나라 일어나라 동포여.
김관식, 다시 광야에, 창작과비평사,1993년 초판 6쇄. 72-74쪽.
이 시집이 김관식 시전집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고, 그가 발표한 시를 가능하면 모두 수록하려고 했다고 하는데... 내가 지닌 판본은 1993년 것이고, 다시 1998년에 다른 판본이 나왔나 본데.. 그것은 확인하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이 시가 정확히 몇 년도에 발표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때인 것만은 확실한데... 개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니, 60대일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그럼에도 그가 우리나라 현실에 절망하고 있음을, 분노하고 있음을 이 시를 통해서 잘 알 수 있는데... 그를 기행만 일삼은 시인으로 치부하기에 이 시는 너무 아프다.
요즘에도 마음에 새겨둘 그런 내용의 시다. 광복 70년 즈음해서 정말로 나라를 생각한다는 사람들, 이 시 한 번 읽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