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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나 - 신혜정 시인의 대한민국 원자력발전소 기행
신혜정 지음 / 호미 / 2015년 6월
평점 :
이 책의 제목은 이 글에서 따왔다. [체르노빌의 목소리]란 책에서 인용한 구절이라고 한다.
"바람이 그쪽으로 안 불어 다행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시내로 키예프로.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바람이 벨라루스로 향할지는 아무도몰랐다. 나와 나의 어린 유리크에게로……. 바로 그날 아이들과 숲에 놀러 가서 괭이밥을 뜯었다.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나!" 68쪽
이 글을 읽으며 선뜩한 느낌이 들었다. 바로 몇 년전 2011년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가 폭발했을 때 우리나라도 똑같은 말을 하지 않았던가. 바람이 우리 쪽으로 불지 않는다고.
살아오면서 가장 강조해서 배운 것이 지구는 둥글다였는데... 둥글다는 의미는 다들 통한다는 얘기가 아닌가. 지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면, 바람의 방향이 중요한 것은 아닌데...
설령 바람의 방향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 방향이 바뀌면? 그 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 대책도 없이 그냥 손 놓고 있는 상태 아니었던가.
그 때로부터 몇 년이 흐른 뒤 우리나라는 엉뚱하게도 '원자력 르네상스'라고 해서 핵발전소 폭발사고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 더 건설하려고만 하지, 다른 대체 에너지를 찾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는 중이다.
이게 뭔가? 도대체 왜 그러는가? 왜 우리에게는 무언가 말해주는 사람이 없는가.
아니다. 말해주는 사람, 많다. 행동하는 사람, 많다. 단지 언론에서 깊이 있게 다뤄주지 않을 뿐. 정치권에서 무시할 뿐. 원자력 관련 단체에서 연구 비용을 받는 학자들이 그에 유리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을 뿐.
그런데 원자력발전소(정확한 명칭은 핵발전소 또는 핵력 발전소라고 하는데... 워낙 광범위하게 원자력발전소가 알려져 있으니 그걸로 쓴다)의 실상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 실정.
그러니 시인인 저자가 체르노빌의 목소리를 빌려 책을 내지 않았는가. 시인다운 감수성으로, 과학적 지식이 아닌, 시인이 이해할 수 있는, 따라서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원자력 발전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원자력 발전은 아니라고...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고. 원자력 발전의 대안은 있는가가 아니라, '탈원전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로. (184쪽)
그렇다. 질문에 원자력을 중심에 놓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놓아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다.
이게 시인의 주장이다. 옳은 말이다. 우리는 탈원전의 방법을 찾아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전의 문제점을 알아야 한다.
적어도 홍보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홍보는 과장과 허위를 품고 있으므로, 그를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자력 발전에 대해서 기본을 알고 있어야 한다.
기본은 바로 원자력발전이 원자력발전 혼자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원자력발전에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 있으니, 그것에 대한 이해가 우선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은 그것들로부터 시작한다.
즉, 양수발전소(원자력 발전은 쉴 수가 없기 때문에... 남아도는 원자력 전기를 사용하기 위해 만든 인공 저수지 두 개- 아래의 물을 남아도는 원자력 전기를 이용하여 위로 올리고, 전력이 부족할 때 물을 아래로 내려 전력을 운용하는 수력발전이라고 보면 된다)와
송전탑(원자력 발전소는 전력을 필요로 하는 곳보다는, 바닷가 근처 한적한 곳에 세워진다. 그곳에서 대도시까지 전력을 보내기 위해서는 고압 송전선이 필요하고, 그런 송전선을 이을 송전탑이 필요하다. 원자력 발전과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이 송전탑으로 원자력 발전과 연결이 되고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
그리고 폐기물(어떤 것은 30만년이나 되어야 방사능이 사라진다고 하는데... 우리나라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고 하지만 겨우 반만년이다. 그런데 그것의 60배나 되는 기간을 보관해야 한다. 과연 안전하게 보관된다는 보장이 있을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대로 그것에 신경써야 하는 후손들은 도대체 무슨 죌까?)
얼핏 원자력발전과 상관없을 것 같은 이것들이 원자력발전의 필수요소고, 이것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지, 이 책에 잘 나와 있다. 과학적인 서술이 아니라, 시인의 감수성이 살아 있는 서술로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여기에 원자력 발전소가 왜 바닷가에 위치해 있는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 하나인 7번 국도에 왜 몰려 있는지, 서해안은 77번 도로에 있으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행운의 숫자로 생각하는 7에 인간 재앙의 산물인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서 있다니, 이것도 참 아이러니다.
그런 발전소들을 찾아 주변 사람들을 만나보고, 원자력 발전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시인의 감수성이 살아있는, 그래서 더욱 마음에 와닿는 원자력 발전에 관한 책이다.
한번 읽어보자. 왜 우리가 원자력 발전을 반대할 수밖에 없는지... 후손들이 왜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리들 생각도 하지 않고 그렇게 했냐고 하지 않게 하기 위해...
질문을 바꾸자.
"탈원전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자. 그리고 행동하자. 그게 나에게, 후손에게, 자연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이 될 출발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