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백석의 맛 - 시에 담긴 음식, 음식에 담긴 마음
소래섭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백석.
40대가 넘은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리라.
그가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언급된 것이 1990년대니, 그 이전에 고등학교를 다닌 40대들은 그를 알기가 힘들다. 사실, 백석만큼 정지용을 모르는 40들도 많으니 무어라 할 말은 없지만.
정지용이나 백석은 모두 90년 이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언급할 수가 없는 시인이었다. 그들은 월북을 했든, 납북을 당했든, 아니면 그냥 북한에 머물렀던 재북이든, 모두 이념의 희생양이 되어 우리 문학사에서 사라져 있었다.
아니, 몇몇 학자들에 의해서는 정00, 백0 등으로 언급이 간혹 되기도 하였지만, 전문적인 연구를 하는 학자들에게도 그럴 정도니, 입시에 찌들어 사는 중고등학생들에게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시인이란 존재하지 않는 시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격세지감.
어느 새 백석은 중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시인이 되었다.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의 시를 교과서에 다뤄주고 있기는 하고, 또 '길상사'와 관련해 체험학습도 하곤 하니, 이제는 많이 알려진 시인이 되었다.
많이 알려졌음에도 그의 시는 어렵다. 아니 시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시에 쓰인 말이 어렵다. 사투리, 많이 알려진 사투리라면 정감있게 읽을 수 있겠으나, 함경도 평안도 사투리, 전혀 뜻도 모르는 너무도 생소한 사투리가 쓰였으므로. 읽기가 쉽지 않다.
이런 언어가 백석을 청소년들에게서 멀어지게 한다. 우선 글자가 눈에 들어오고 입에 들러붙어야 하는데, 여기서부터 탁 막히니, 백석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한들, 누가 선뜻 그의 시를 읽으려 하겠는가.
한 번 시집을 펼치고는 닫아버리기 일쑤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미 발표한 백석의 시를 다시 고쳐 쓸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백석 시에 친숙하게 다가가게 할 수 있을까.
시를 연구하는 사람들이라면, 또 시를 가르치는 사람들이라면, 여기에 백석의 시를 좋아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이 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다 이 책을 발견했다. 살까 말까 많이 망설이다 "알라딘 온라린 중고"에서 구입한 책이다. 백석의 시를 음식을 중심으로 접근한 책.
먹는 것, 이것은 누구나 좋아하지 않나. 게다가 백석의 시에는 음식이 너무도 많이 나오니, 음식과 백석의 시를 연결지으면 백석의 시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도 굳이 이런 목표를 정하지는 않았겠지만, '박사학위 논문을 청소년들을 비롯해 일반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수정·보완' (8쪽)했다고 하니, 백석 시에 쉽게 다가가게 하는 일종의 안내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각 장의 처음에 백석의 시를 소개하는데, 그 소개시의 표기를 고형진의 "정본 백석 시집"에서 빌려왔다고 한다. 가능하면 원어를 살리되, 현대 표기에 맞게 했고, 어려운 사투리는 밑에 주석으로 처리를 했다.
그럼에도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당부한다.
'작품을 읽을 때 처음 한 번은 가급적 주석을 보지 않고 읽어보기를 바란다.'(7쪽)
왜냐하면 시는 의미해석도 중요하지만 입에 감기는 말의 맛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는 음악과 친하기 때문이기도 한데, 의미 해석에 막혀 시의 맛을 느끼지도 못하고 접는 경우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백석의 시를 소개하고, 그의 시에 나오는 음식을 중심으로 백석 시에 접근해 간다. 그 저근이 상세하고 설득력이 있다. 학위 논문을 수정한 것 답게 나같은 사람이 읽어도 쉽게 이해가 된다.
그러니 청소년들이 읽어도 별 무리가 없겠다 싶다. 여기에 백석에 관한 이야기와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부록처럼 수록해 놓고 있어서, 시만이 아니라, 백석 당시의 사회 모습도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백석 시의 의미를 갖고 끙끙댈 필요가 없다는 것, 음식이 왜 백석 시에서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할까를 읽다보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장점이다.
이 책을 읽고 백석에게 흥미가 생겼다면 그의 시집을 사서 읽으면 될 일이다. 아니면 음식이 갖는 사회 · 문화 · 역사 · 정신적 의미에 관심이 생겼다면 음식에 관한 더 많은 책을 찾아서 읽어도 좋고.
덧글
사실 관계를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26쪽. 그는 85세인 1995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66쪽. 1995년(84세) 사망한 것으로 언론에 추정 보도됨.
그렇다면 아주 단순한 오타인데... 그래도... 그가 1912년생이라고 하니, 26쪽을 84세로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249쪽. 백석의 시가 노래가 된다면
이 책이 2009년판인데, 언제인지 모르지만 백창우, 김현성 등에 의해서 백석 시에 곡이 붙여져 노래로 불려지고 있다. 비록 많이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관심있는 사람들은 백창우나 김현성을 찾아서 들어도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