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번 겨울을 보낸 자들은
살아서 남은 자들은 기쁨에 들떠
창을 열어 따슷한 바람을 맞아들이고,
맑은 햇살을 손에 받고,
문득 잊었던 이름 생각나면 짐짓
부끄럽고 슬픈 얼굴을 하고.
밤이면 서로의 몸 뜨겁게 탐하며,
싹으로 트고 꽃으로 피기 위해서.
머지않아 가진 것 다져 열매도 맺어야지,
지상에서 가장 크고 단 열매를.
흙이 되어버린 이들의 이 값진 눈물과
물이 되어버린 이들의 뜨거운 피를
잊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또 닥칠 비바람을 이기기 위해서
더 단단히 몸을 여미고 죄면서.
잊었던 이름 더 까맣게 잊어버리며,
살아서 남은 자들은,
또 한번 겨울을 보낸 자들은.
신경림,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창작과비평사, 16쪽.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데, 왜 계절과 정반대인 이 시가 마음에 와 닿았을까?
자연의 계절은 여름인데, 내가 체감하는 계절은 겨울인가?
도대체 나는 언제 봄을 맞이할 수 있을까?
봄이 계절의 순환처럼, 자연처럼 자연스레 오면 좋겠지만... 인간 세상의 봄은 그냥 오지 않으니, 그 봄이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날까.
그 일들을 겪고 봄을 맞이한 사람은 이 시에 나온 구절처럼 '기쁨에 들떠' 있겠지. 그리고 지금은 봄이지만, 겨울이 또 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 단단히 몸을 여미고 죄'게 되겠지. 그래야 하겠지.
그래, 그런 봄을 맞이하여, 또 한번 겨울을 보낸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 무더운 여름날, 겨울을 보낸 시를 읽으며 봄을 상상하며 시간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