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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기록 - 버나드 루이스의 생과 중동의 역사
버나드 루이스.분치 엘리스 처칠 지음, 서정민 옮김 / 시공사 / 2015년 6월
평점 :
이 책을 반 정도 넘게 읽으면서 니체가 생각났다. 니체의 "이 사람을 보라"라는 책 제목이.
니체는 그 책의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잘 들어라! 나는 이러한 사람이로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나를 다른 사람으로 잘못 보아선 안 된다." (니체, 이사람을 보라, 박영문고141. 1983 중판 10쪽)
버나드 루이스.
이런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차음 듣는 이름이었는데, 중동 문화와 역사에서는(엄밀히 말하면 중동이라고 지역적인 이름을 쓰면 안된다. 그는 이슬람 역사와 문화를 연구한 것이지 중동이라는 특정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이 책의 작은 제목에 따라 중동이라고 쓴다. 중동이라는 말을 이슬람으로 바꾸어 생각해도 무방하다.) 잘 알려진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이슬람 하면 우리나라에서 이희수 교수만 알고 있었는데, 이희수 교수가 이슬람 붐이 일 때 많이 언급되었기 때문이고, 그가 쓴 책을 한 권 읽어서이기도 하지만... 중동 문화와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버나드 루이스는 빼먹어서는 안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는 영국에서는 최초의 중동에 관한 역사학자라고 할 수 있다. 영국에서 나고 자라 영국에서 공부했지만, 중동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각 나라의 언어를 공부해 그 나라의 언어 자료들을 읽을 수 있게 된 사람.
2차 세계대전 때는 정보 분야에서 일했으나 전쟁이 끝나고 다시 대학에 들어와 학자로서 인생을 보내기 시작한 사람.
1970년대에 미국 프린스턴 대학으로 옮겨와 미국시민으로서 생의 후반부를 살아간 사람. 그는 중동 역사를 알게 하는 많은 책들을 썼으니, 그의 삶과 중동의 역사는 함께 한다고 할 수 있다.
그가 1916년 생이니 올해로 100살이다. 이 책이 그의 나이 95세 때 나왔다고 하니, 그 나이까지 왕성하게 활동했다는 사실이 존경스럽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그의 장점은 외국어 습득능력에 있다. 다양한 언어를 읽을 줄 알게 되었기에, 1차 자료를 읽고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나라를 방문하면서 자신의 연구를 구체화할 수도 있었고.
이런 결과로 미국의 정치가들에게 중동 문제에 대해서 조언을 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이로 인해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니체의 첫 말처럼 그는 다른 사람으로 잘못 볼 필요는 없다.
이 책에 나오듯이 그는 역사학자일 뿐이다. 정치가들에게 조언을 했다면 그것은 그가 연구한 사실들을 토대로 정보를 제공한 것일 뿐이다. 정보 제공과 정책 결정은 전혀 다른 몫이고, 학자는 정보 제공을 하지만, 정책 결정은 하지 않는다.
따라서 정책 결정에 관해서 학자에게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의 정보를 토대로 정책 결정을 했을테니, 그가 제공한 정보가 사실에 부합하느냐 아니냐는 반드시 밝히고 넘어가야 한다.
이 책은 그러한 그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다. 자신이 어떻게 공부했고, 중동 문제에 어떻게 접근했으며, 그러한 역사를 공부하면서 만난 사람들, 겪은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래서 이것은 한 사람의 전기이지만, 읽어가면서 자연스레 이슬람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현대사에서 이슬람 국가와 다른 종교를 지닌 국가들의 갈등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한 사람의 삶이 다른 나라의 역사를 알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의미가 있고,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슬람 역사 연구의 방향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가 있게 된다.
특히 오리엔탈리즘의 주창자인 에드워드 사이드와 그의 차이가 이 책에 잘 드러나 있으니... 한 번 비교하면서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고...
책의 중간중간에 교육제도에 대하여, 또 역사학자들의 태도에 대한 글들도 나와서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어떤 자세를 지니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다.
또 우리가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는 중동 지역의 유명한 사람들과 얽힌 일화도 나오니... 재미도 있고 쉽게 잘 읽히기도 하는 책이다. 그가 시를 번역하기도 했다더니, 그런 문체의 힘이 이 자서전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 공부는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알고,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과거에 낸 책도 다시 검토해서 개정판을 꾸준히 내고 있는데... 이렇게 끊임없는 학자로서의 태도가 그를 중동역사 전문가로서 존재하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토대로 중동 여러 나라들의 역사나 문화, 또는 이슬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더 깊은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버나드 루이스라는 사람. 바로 나는 이런 사람이다. 이 책에서 그렇게 자신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을 잘못 알고 있지 않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고 생각하며...
덧글
고맙게도 이 책은 출판사에서 보내주었다. IS로 이슬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중동 역사, 또는 이슬람에 대해서 서양인의 삶을 통해 개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