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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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무척 유행했던 책이다. 그때는 당연히 우리 사회가 '피로사회'인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하면서 읽지 않았던 책.

 

어쩌면 유행처럼 한 책이 번지는데 대해서 일종의 거부감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또 그런 시류에 참여한다는 일이 '피로'하게 여겨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이 내가 생각하는 '피로'와 다르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쳐 떨어짐, 무언가 하고 싶어하지 않음, 무관심으로 생각했던 '피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발달로 사람들을 성과주의로 몰아가는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는 용어로 '피로'가 쓰였다는 것이다.

 

이 책은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11쪽)는 말로 시작한다. 한 시대의 사회를 규정하는 질병이 있다는 얘긴데, 지금 시대의 질병은 면역체계를 건드리는 질병이 아니라, 풍요의 질병, 지나침의 질병, 긍정성 과다의 질병이라는 것이다.

 

하긴 우리는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는데, 그런 풍요 속에서 오히려 부족함을 느끼니 그것이 바로 사람들에게 신경성 질병으로 나타나고, 우리 사회는 이런 신경성 질병을 앓고 있다고 하는 말이 타당하기도 하겠다.

 

"신경성 폭력은 시스템에 이질적인 부정성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시스템적인 폭력, 시스템에 내재하는 폭력이다. 우울증도,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나 소진증후군도 긍정성 과잉의 징후이다. 소진증후군은 자아가 동질적인 것의 과다에 다른 과열로 타버리는 것이다." (22쪽)

 

이렇게 넘쳐나는 사회를 활동사회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 때 활동이 긍정적인 의미라고 하기보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수 있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회, 무언가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강요하는 사회, 그럼에도 그 자기계발의 깊이는 없이 그때그때 활용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약물에 의존하는 도핑과 같은 사회라고 한다.

 

"활동사회라고 할 수 있는 성과사회는 서서히 도핑사회로 발전해간다. ... 도핑은 말하자면 성능 없는 성과를 가능하게 한다." (65쪽)

 

이런 사회가 어떻게 피로하지 않겠는가. 이런 사회에서 모든 책임은 개인이 지게 된다. 사회 문제를 개인화한다. 이 책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성과사회의 피로는 사람들을 개별화하고 고립시키는 고독한 피로다."(66쪽)

 

그러나 이러한 피로가 마냥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피로를 느끼는 사람은 쉴 수밖에 없다. 쉼, 그것은 자신의 몸을 떠나 사유를 할 수 있다는 얘기고, 자신을 바라보는 눈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빠르게, 빠르게 지나쳐 왔던 세상에서 한 발짝 물러나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피로'다. 그런 '피로'는 긍정적인 힘으로 작동한다. 그는 일허게 말한다.

 

"피로는 무장을 해제한다. 피로한 자의 길고 느린 시선 속에서 단호함은 태평함에 자리를 내준다. 막간의 시간은 무차별성이 시간, 우애의 시간이다." (72쪽)

 

이때 '피로사회'의 사람은 비로소 '주권자'가 된다. 물론 그는 주권자이자 희생자이다. 그 둘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그것이 바로 성과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이 책의 부록이라고 할 수 있는 '우울 사회'에서 그는 이 점을 '호모 사케르'라는 용어를 빌어 이야기한다.

 

"성과사회의 주권자는 자기 자신의 호모 사케르인 것이다. 성과사회에서도 주권자가 호모 사케르를 낳고 호모 사케르가 주권자를 낳는 역설적 논리가 성립한다." (110쪽)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보면 우리는 주권자가 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우리는 호모 사케르로만 존재하고 있지 않았는가.

 

하여 세상과 자신을 보는 눈을 갖지 못하고 그냥 '피로'에 지쳐 나가떨어져 있기만 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더 달릴 곳도 없는데... 잠시 멈춰야만 하는데도 말이다. 이제는 멈출 줄 알아야 한다. 멈춰서 자신을 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호모 사케르로 지내왔다면 이제는 주권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이 '피로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일 것이다.

 

'피로사회'는 '성과 사회'다. 성과 사회는 경쟁만을 이야기하는 사회다. 그것이 굳이 남을 적대시하지 않더라도 이미 남은 내 내면에 들어와 있다. 나는 남을 내면화해서 책임을 나만이 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성과 사회, 피로 사회를 벗어나야 한다. 일 덜하기 운동, 일자리 나누기 운동, 저녁이 있는 삶, 기본 소득 논의 등 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것은 이제 '피로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호모 사케르'에 머물지 않고 '주권자'가 되기 위한 행동인지도 모른다.

 

그런 행동을 통해서 사회는 변할 수 있기도 하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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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5-01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과지상주의에 대한 일침이었더군요 ...

kinye91 2015-05-02 07:20   좋아요 1 | URL
미래 세대들이 성과지상주의 사회에서 살아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