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봄이 시작되고 있다. 햇살도 따스하고, 세상에 연두빛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노란 산수유도 꽃망을 터뜨리기 시작했고.

 

남도에는 매화꽃과 동백꽃이 자신들의 자태를 자랑하리라.

 

계절은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는데, 아직도 우리네 생활에는 봄이 오지 않았다. 봄이 올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오히려 봄이 더한 비극으로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다.

 

삶을 치열하게 살수록 봄이 다가와야 하는데, 삶이 치열할수록 이상하게 겨울이 더 길어지고 있단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희덕의 시집을 읽다. 예전에 읽었던 시집을 다시 펼쳐든 이유는 무언가 위로를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봄에... 계절의 봄과 사람의 봄이 함께 가지 못함에 대한 위로라고나 할까.

 

시집을 읽다가 삶에 대한 시를 발견했다. 삶이 거스름돈이다. 삶이 여분이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무언가에 자신의 존재를 지불하고 남아 돌아오는 게 삶이라는 얘기다. 즉, 행위가 없으면 삶도 없다.

 

거스름돈을 받지 못하는 삶. 그 삶은 어쩌면 처음부터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삶에서 지불할 때 거스름돈을 받지 않기 위해 딱 맞게 지불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삶에서 항상 더 많이 지불한다. 무언가가 돌아올 수 있게.

 

그러므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 무언가를 할 때 거스름돈이 더 많아지게 하려면 누군가에게 등불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가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

 

내 그림자가 다른 사람의 그늘이 될 수 있어야 하고, 내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아름다움으로 남을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이 내 삶을 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시집에 실려 있는 '산속에서'라는 시처럼.

 

그래, 그래서 나희덕의 시를 읽으며 내가 지불해야 하는 삶의 돈이 무엇인지, 그래서 나는 얼마의 거스름돈을 받을 것인지를 생각하며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는다.

 

거스름돈에 대한 생각

 

삶은 왜

내가 던진 돌멩이가 아니라

그것이 일으킨 물무늬로서 오는 것이며

한줄기 빛이 아니라

그 그림자로서 오는 것일까

 

왜 거스름돈으로 주어지는 것일까

 

거슬러 받은 오늘 하루,

몇개의 동전이 주머니에서 쩔렁거린다

종소리처럼 아프게 나를 깨우며

 

삶을 받은 것은

무언가 지불했기 때문이다

 

나희덕,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창비.1996년 5쇄.  81쪽

 

 

산속에서

 

길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터덜거리며 걸어간 길 끝에

멀리서 밝혀오는 불빛의 따뜻함을

 

막무가내의 어둠속에서

누군가 맞잡을 손이 있다는 것이

인간에 대한 얼마나 새로운 발견인지

 

산속에서 밤을 맞아본 사람은 알리라

그 산에 갇힌 작은 지붕들이

거대한 산줄기보다

얼마나 큰 힘으로 어깨를 감싸주는지

 

먼 곳의 불빛은

나그네를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걸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나희덕,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창비.1996년 5쇄. 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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