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집의 제목이 된 '사평역에서'는 교과서에도 실리는 등 많이 알려진 시가 되었다.

 

특히 이 시는 김현성이 곡을 붙여 노래로도 불러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고.

 

오래 된 시, 곽재구가 시인으로 등단하게 만든 시가 바로 이 '사평역에서'인데...

 

다시 한 번 시집을 읽어 보았다.

 

적어도 이 시집에서는 낮은 곳에 사는 사람들, 소위 비루한 삶을 사는 사람들 이야기가 많으니 말이다.

 

우리가 아무리 포장을 하고 가리려고 해도 낮은 곳에 사는 사람들을 없앨 수는 없는데... 1980년데 초반에 나온 이 시집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지금 존재하지 않을까 하면 그렇지 않다.

 

교묘하게 가려져 있을 뿐, 이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만큼 사회가 나아지지 않았다는 얘기도 되겠는데...

 

그럼에도 복지 논쟁은 끝날 줄을 모르니, 나라란 적어도 제 나라 사람들이 힘겨운 삶에 짓눌려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 시집의 끝부분을 장식하고 있는 '대인동' 연작들은 마음을 우울하게 한다. 그러나 우울함에서 그쳐서는 안된다. 더 나은 곳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겨울이다. 이 시집에 '세한도'라는 시가 나오는데... 차가운 겨울, 삶도 겨울에 해당하는 그런 모습, 그러나 거기에 굴복하지 않고 이겨내려는 모습을 그리고 있어서 김정희의 '세한도'가 내뿜는 정신을 이 시에서 고스란히 이어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정신, 겨울이라도 결코 굽히지 않겠다는 그런 정신을 이어서 우리 역시 견뎌야 하리라. 이 겨울을. 그래서 아침을 맞이해야지.

 

곽재구의 '아침'이라는 시. 그런 아침을 맞이해야겠다.

 

                                                 아침

 

                                                    1

 

  고구마시렁에 고구마들이 추워 서로 팔 껴안는 소리 들릴까 제일 아래층에 눌린 약한 고구마들 창밑 겨울 햇살 쪼일 수 있게 힘센 고구마들 길 비켜주는 소리 후둑후둑 햇살의 칼과 맞부딪치며 마음속의 죄도 풀려 봄바람 이는 소리.

 

                                                     2

 

  녹슨 못 일렬종대 대롱대롱 햇살 속에 그네 타는 청국장 메주 밤새 물든 곰팡 서로 비벼주고 털어주며 왁자지껄 쉿 너무 소리가 커 조용히 마음속의 소리 더욱 조용히 흰 수염 입술 위 손가락 세우는 노인 메주 그리고 제일 늙은 메주와 제일 어린 메주부터 다시 순서대로 햇살 속에 그네타기 툭툭 겨울공기 차올리며 추운 햇살 속 푸른 봄바람 찾기.

 

곽재구, 사평역에서, 창작과비평사. 1997년 개정 8쇄. 74쪽.

 

이 겨울 얼마나 따스한 시인가. 좋다. 곧 봄이 온다. 봄바람 찾기, 봄바람 맞기, 햇살 맞이하기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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