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나들이.

 

시집 코너에서 예전에 누군가의 손에서 누군가의 마음을 울렸을 시집들을 살펴본다.

 

때로는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때로는 시인이 좋아서, 때로는 한 번 도전해 봐야지 하는 마음에 시집을 골라든다.

 

박해석.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표지를 들추어 보니 연배가 꽤 있다.

 

이 시집 역시 오래 전에 나왔고. 1996년 판이다.

 

시집 뒤의 발문을 보니 정호승이 글을 썼다. 둘이 대학 동창이라고 해야 할 듯. 비록 박해석 시인은 졸업을 하지 않았지만.

 

그가 등단한 것은 40이 넘어서라고 한다.

 

그러니 그의 시들은 그 안에서 곰삭을 대로 곰삭아서, 그것들이 언어가 되어 나왔을 터.

 

제목이 "견딜 수 없는 날들"이고, 시인이 바라본 우리 현실이 주요 대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하나 결코 어렵지 않은 시어들로, 어렵지 않은 내용들로 시집이 이루어져 있다.

 

읽으면서 마음을 아프게 하는 시도 있고(투신), 따스함을 느끼게 하는 시(별 하나가 내려다 본다)도 있다.

 

현실이 각박하고 힘들더라도 우리는 견뎌야 한다. 견뎌야만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견딤이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함께 해야 견딜 수 있다.

 

사람을 이 세상 어려움으로부터도 견디게 하는 힘, 그것은 바로 사람에게서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에게 견딜 수 있는 따뜻한 불빛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따뜻한 불빛같은 존재.

 

시인은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다만,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부터 하면 된다고 한다.

 

그랬을 때 우리는 견딜 수 있다. 참으로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이 어려움으로부터 우리를 이겨내게 할테니... 시인의 시 한 편.

 

                          기쁜 마음으로

 

너희 살을 떡처럼

떼어 달라고 하지 않으마

너희 피를 한잔 포도주처럼 철철 넘치게

따르어 달라고 하지 않으마

 

내가 바라는 것은

너희가 앉은 바로 그 자리에서

조그만 틈을 벌려주는 것

조금씩 움직여

작은 곁을 내어주는 것

 

기쁜 마음으로

 

박해석, 견딜 수 없는 날들, 창작과비평사. 1996년. 30쪽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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