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삼은 나에게 '울음이 타는 가을 강'으로 다가온 시인이다.
아주 오래 전 시인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 그렇지 않은가. 교과서에 실린 시인들은 왠지 나와는 너무 먼, 이미 아주 오래 전에 살았던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말이다.
그런데 1996년에 이 시집이 나왔다. 90년대에 나왔다는 얘기는 이 시인이 그리 오래 전 사람이 아니라는 얘기로 받아들였는데... 그는 1933년 생이다.
아직 살아 있어도 괜찮은 나이인데... 연보를 찾아보니 1997년에 돌아가셨다. 이 시집이 나오고 나서 1년이 지난 다음에 돌아가신 것.
그야말로 천상병의 시처럼 '귀천'이었으면 하는 마음이고.
이 시집을 읽으며 이상하게 죽음의 냄새가 느껴졌는데, 그것이 공연한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 내용에 제목을 붙이지 않은 '무제'가 9편이나 되고, 나머지 내용도 늙음, 죽음, 망각 이런 것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왜 죽음에 대한 시가 많은가 했더니, 그가 30대에 이미 고혈압으로 쓰러졌다고 하는 얘기를 이 시집에 있는 민영 시인의 발문을 통해서 알 수 있어서, '아, 그랬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 죽음은 늘 우리 가까이 있지만, 이 죽음을 인식하면서도 영원을 꿈구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영원을 자연이 대변하고 있다.
자연을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인간의 모습을 다르게 다가오고, 그는 말년의 이 시집에서 자연과 인간을 대비시키고 있는데...
시집을 읽으며 마음이 우울해지곤 했는데, 그럼에도 받아들일 점이 있으니... 바로 우리가 자연을 우리 삶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
자연을 제대로 인식할 때야 우리 삶이 풍성해질 수 있다는 것. 그 점을 이 시집에서 느끼게 됐다.
하늘의 금석(今昔)
한 오십 년 전
그때는 못살았지만
해가 너무 밝아
눈물이 날 정도였는데,
그 눈부신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는데,
이제 와 보면
한정 없이 그립구나.
지금은 그 시절에 비하여
먹고 입는 것은
비할 수 없이 발전했건만,
그 총대가(總代價)로
부연 하늘을 조석으로 바라보고 사니
누구더러 그때 그 하늘을
돌려달라 할까.
박재삼, 다시 그리움으로. 실천문학사. 1996년. 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