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시인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25
일과시 동인 지음 / 실천문학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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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시 동인 시집"이다. 이 시집이 9집이다. 아홉 번을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시집을 냈다. 끊이지 않고 20년에 걸쳐 시집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아니, 고맙다.

 

이들은 노동자다. 노동자 시인이다. 시인 노동자다. 어떤 말이 어울릴지 몰라도 일과 시는 둘이 아니라 하나다. 이들에게는 일이 곧 시이고, 시가 곧 일이다. 시가 곧 삶이다.

 

삶을 떠난 시들을 쓰지 못하는 사람들. 삶을 시로 표현해 내는 사람들. 이들이 바로 일과 시 동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시를 많이 읽지는 못했다. 기껏 가지고 있는 시집이라고 해야 이번이 두 권째.

 

그래도 계속 읽고 싶어진다.

 

포스트 모던시대, 신자유주의 시대에 노동운동이 약화되고, 노동자 의식도 더불어 약해졌지만, 그래도 노동자들은 세계의 중심이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시로 표현한 이러한 시집은 아직도 우리에게 무언가를 전해주고 있기 때문에.

 

이번 시집에 실린 시인들을 보자. (가나다 순이다. 시집도 이렇게 가나다 순으로 실었다.)

 

김명환, 김용만, 김해자, 김해화, 문동만, 서정홍, 손상렬, 송경동, 이한주, 조태진 

 

민주노동 지도부에 대한 민주노총 조합원 직접 총투표가 올해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그런데 이것을 언론에서는 잘 다뤄주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대표를 뽑는 선거인데, 언론노조가 있을텐데도 관심 밖이다. 그만큼 노동운동은 이제 우리의 관심에서 많이 멀어져 가고 있다.

 

이런 때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규직 노동자들의 해고를 더 편하게 해야 한다고, 우리나라는 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하기가 어려워서 노동유연성이 떨어지고,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런 말을 해도 어영부영 넘어가는 나라다.

 

그만큼 삶은 피폐해졌고, 비정규직이 엄청나게 늘어났으며,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기에 바빠 다른 사람들의 삶에는 눈을 돌리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하여 노동시라는 말은 저 멀리 사라져 버리는 이 때, 그래도 노동과 시가 떨어져서는 안된다고 하는 사람들, 일과 시 동인들이 이런 시집을 낸 것은 반가운 일이다.

 

우리는 일에서 떨어질 수 없는 사람들인데, 우리네 삶을 유지하는 것은 결국 일인데, 이런 일이 비정규직을 없애고 정규직으로 전환해서 자신들의 삶을 계획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그런데도 벌써 우리는 노동에서 멀어져 가고 있으니...

 

이 시집에서 맘 속으로 파고 들어온 시.

 

   돋보기

 

결국은 돋보기를 썼다

안 보이는 게

불편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외면하는

내가 미워서

 

볼 만큼 보고

쓸 만큼 썼으므로

세상에 눈 감으면

편할 줄 알았다

 

나이를 먹는 거보다

더 슬픈 건

상처받기 싫어서

사랑하지 않는

나 자신이었다

 

일과시 동인, 못난 시인, 실천문학사, 2014년. <김명환, 돋보기 전문>.27쪽

 

나이를 먹어가면서 정말로 슬퍼해야 할 일은 더 이상 상처받기 싫어서 사랑을 하지 않는, 관심을 두지 않는, 일에서 거리를 두고 눈 감아 버리는, 그래서 그냥 무덤덤하게 살아가는 그런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

 

어차피 안돼 하면서 지레 포기하고, 세상은 원래 그런 거야 하면서 무슨 도인인양 달관한 듯한 말을 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이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포기해 버리는 그런 삶. 그것이 나이를 먹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일테다.

 

무언가를 도전하지 않는, 그 자리에 그냥 주저앉아 버리고 마는, 그런 나이. 그것은 아니다. 이들이 펴낸 동인 시집 중에 "아직은 저항의 나이"라는 시집이 있다.

 

저항을 하지 못하는 나이는 없다. 그건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포기한 것이다. 스스로 늙어버린 것이다. 자신이 상처받기 싫어서.

 

이번 시집을 읽으면서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 일과 시를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음에, 그들이 시집을 냈음에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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