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가리고, 세상을 가리고, 진실을 가리고 있는 장막. 요즘은 자꾸 이 장막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장막...

 

어느 사회에서든 없지는 않았을테지만, 요즘은 이런 장막이 많아도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드는데...

 

예전에 역사를 배울 때 철의 장막, 죽(竹)의 장막은 배웠는데... 인(人)의 장막은 배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데 혹 배웠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중에 어떤 장막이 가장 강하고 질길까?

 

철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녹이 슬고, 대나무는 사시사철 푸르다지만 그래도 식물성이니 한계가 있는데, 사람은 정말로 시류를 따르기도 하고, 거스리기도 하는 그야말로 능동적인 존재이니, 가릴 사람의 의중에 따라서 잘도 변하니, 이 중에 가장 강한 장막은 인의 장막이지 싶다.

 

오죽하면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그런데 요즘 중국에서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했다는 '십상시'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이런 말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는 말은, 무언가 비슷한 일이 있다는 얘기다. 일명 유추다.

 

사실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지만, 유추는 그냥 생기지 않는다. 비슷하니까말해진다.

 

굳이 옛말을 들먹이면 경어인(鏡於人)이라고 사람에 자신을 비추어 보라고 했으니,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좋지 않은 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 분명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야 한다.

 

그런 판단을 잘하는 사람이 인사(人事)를 잘하는 사람이고, 이런 사람에게는 만사(萬事)가 편안해질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자꾸 안 좋은 일에 거론이 되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그 때 인사는 만사가 아니라 망사(亡事)가 된다.

 

답답한 나날들인데... 시집이 몰려 있는 도서관 서가에서 시집들 제목을 하나하나 살펴보다 이 시집을 골랐다.

 

시인은 처음 듣는 이름이다. 나름 시들을 읽었다고 자부하는데도, 처음 듣는 시인도 많은데, 이 도서관이 시집의 겉표지를 다 떼어버려서 시인에 대한 설명을 볼 수가 없다. 그래 시를 읽는데 시인을 알면 좋겠지만, 몰라도 시를 느낄 수 있으니 뭐...

 

이 시집을 고른 이유가 바로 인의 장막과 관련이 있다.

 

박용재 시집,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민음사

 

이 말은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는 대상만큼, 또는 대상처럼 산다는 얘기다. 그러니 내가 사랑하는 사람 만큼, 내가 사랑하는 사람 처럼, 산다는 얘기다. 사람으로 치면...

 

자, 나는 어떤 사람들을 사랑하는가?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존재들을 사랑하고 있는가?

 

그것이 바로 내가 사는 모습인데... 인의 장막 속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그 순간에 이미 자기 주변의 사람을 바로 바라보게 되는데... 인의 장막 속에 갇혀 있으면서도 인의 장막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그런 사람은... 딱... 그 만큼만... 살고 있는 것이다.

 

딱...그 만큼...만... 사는 사람을 믿고 사는 사람은...

또 딱 그...만큼...만... 살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 주변 사람들을 다시 보자. 그들을 감시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말들을 듣고 사는지 안다면, 바로 나를 알 수 있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그 사람은 바로 내 삶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은데...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저 향기로운 꽃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저 아름다운 목소리의 새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숲을 온통 싱그러움으로 만드는 나무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을 사랑한 만큼 산다

외로움에 젖은 낮달을 사랑한 만큼 산다

밤하늘의 별들을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사람을 사랑한 만큼 산다

홀로 저문 길을 아스라이 걸어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나그네를 사랑한 만큼 산다

예기치 않은 운명에 몸부림치는 생애를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그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만큼이 인생이다

 

박용재,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민음사. 2003년 1판 1쇄. 13쪽    

 

시인에게는 죄송하지만 1연으로 되어 있는 시를 4연으로 나누어 적었다.

 

내가 발 딛고 사는 세계의 존재들, 즉 자연의 식물들을, 그 다음에는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보는, 내가 추구하는 이상인 우주의 천체들을, 그리고 나와 함께 살아가는, 그래서 마음을 서로 나눌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사랑한 만큼 우리의 삶의 부피와 넓이와 깊이가 정해질테니...

 

그렇게 이해하기 쉽게 그냥 편의상 나누어보았지만, 원래 시는 연 구분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할 것.

 

바로 이 만큼이 산다는 것이다. 내가 사랑한 만큼.

 

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사랑을 넓혀야 겠다. 아래로도 위로도, 그리고 옆으로도. 그것이 바로 내가 잘 사는 일이 될테니.

 

적어도 남을 위한다는 사람은 인의 장막에 갇혀 있지 말고, 수평으로, 수직으로 그리고 사람의 마음까지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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