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사유의 기호 - 승효상이 만난 20세기 불멸의 건축들
승효상 지음 / 돌베개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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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세우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이라는 말이 우리에게는 더욱 익숙하다. 이 말은 '집은, 혹은 건축은 단순히 기술적 구조적인 측면에서 세우는 물리적 운동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를 짓고 밥을 짓듯이 어떠한 재료를 가지고 일련의 사고 과정을 통하여 뭔가 만들어내 가는 것'이란 뜻이다.

... 도시의 가로에 빼곡히 들어서 있는 건물들 가운데 이런 의미에 부합되는 건축을 구별해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내가 믿는 한, 첫번째는 그 건물이 합목적인가에 있다. 두번째로 장소성을 들 수 있다. 세번째로 거론해야 하는 중요한 명제는 시대성의 문제이다.' (23쪽)

 

건축을 그냥 기술로만 파악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건축을 예술로 파악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승효상은 이 책에서 건축은 이런 개념으로만 설명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는 건축의 어원을 따져 건축(architecture)이 으뜸 혹은 크다는 뜻의 'arch'와 기술 혹은 학문이라는 뜻의 'tect'라는 라틴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고 해서 '원학(원학)'이라고 할 수 있다고 시작하는 글에서 말하고 있다.

 

그만큼 건축은 우리 삶의 원형이라는 말이고, 건축에는 우리 삶을 만들어가는 요소가 있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그는 겉으로만 화려한 건축을 무시하고 경원하고 있다. 겉모습이 아니라 생활이 반영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건축이야말로 의미가 있고, 그것이 좋은 건축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좋은 건축이라고 말하는 세 가지 요소를 보면 알 수 있다. 삶에 기여하는 합목적성과 그 시대, 그 공간에 어울리는 장소성과 시대성을 확보해야만 좋은 건물이 될 수 있다고 하니, 우리 주변에서 좋은 건축이 어떤 것인가는 이 세 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자신에게 영향을 준 건축을 찾아 여행을 떠나고 있다. 이 여행은 몸의 여행이자 사유의 여행이기도 하다.

 

책으로만 접한 건축을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며, 그것을 자신의 사유로 끌어안아 자신의 건축으로 되살려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직접 보고 느낀 결과는 책에서 생각했던 결과와는 다르며, 이런 보고 느끼고 생각함이 승효상의 건축을 이루는 요소가 된다.

 

이 책은 건축기행이라고 할 수 있는데, 단순한 건축기행이라고 하기보다는 승효상의 건축 사유 기행이라고 하는 편이 더 좋겠다.

 

그는 세계 각지의 건축을 통해서 자신의 건축에 대한 사유를 확장시키고 만들어가고 있다. 그 점을 하나하나 건축기행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건축물들을 그를 따라서 함께 보면서 느끼는 시간이 바로 이 책을 읽는 시간이 되는데...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가서 보면서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겠지만, 그것이 그리 쉽지 않으니 책을 통하여 여행하는 방법이 차선으로 선택된다.

 

그렇다. 이 책을 통해서 승효상과 함께 건축 기행을 한다. 그와 함께 건축에 대한 사유를 넓혀 나간다. 단순히 넓혀만 나가서는 안된다. 깊게도 해야 한다. 그래야 자기 것이 된다.

 

기행이나 공부의 가장 큰 목적인 결국 남의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 아니겠는가. 공부가 스승의 학문을 배워 자기 것으로 만들어내야 진정한 공부가 되듯이, 건축 또한 세계 각지의 좋은 건축을 보면서 결국은 내 건축을, 우리의 건축을 생각해야 하고,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건축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특히 이 책에서 많이 언급되고 있는 빛에 대한 문제, 사람 삶에 대한 문제, 그리고 비움의 문제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준다.

 

결국 건축은 삶일 수밖에 없으므로, 우리의 삶에는 빛과 공기가 필수적이고, 이러한 빛과 공기는 공간이라는 비움으로 인해 우리에게 다가오게 될테니...

 

몇 권 되지 않지만 건축에 대한 책을 읽으며 봐왔던 건축물도 있지만, 그것들에 대해 새로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책이고, 왜 그 건축들이 좋은 건축인지 생각할 수 있게 해준 책이어서 이 책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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