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 클래식 레터북 Classic Letter Book 3
이동민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수능이 끝났다. 늘 일어나는 일답게 이번 수능도 오류와 난이도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12년간 공부한 것을 측정한단 말인가?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을 결정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한데...

 

전국민이 교육전문가라고 하는 이 나라에서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듯이, 모두가 교육전문가라서 한 마디씩 하는 것이 이 나라 교육정책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도 된다.

 

수능에 즈음해서, 아니 요즘 우리나라 세태 때문에 "탈무드"를 읽고 싶어졌다. 어렸을 때 읽었던 탈무드는 이솝 우화처럼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생각만 남아 있는데, 요즘 유대인 교육법인 '하브루타'라고 토의-토론 식 교육이 소개되고 있던데, 유대인들이 교육에서 가장 기본으로 삼는 책이 탈무드라고 하니, 어른이 된 지금 다시 읽어보자 하고 생각한 것.

 

그런데 책을 검색해 보니 탈무드는 아이들을 위한 책들이 대부분이다. 도대체 뭐야, 집에 있는 삼성 고학년 문고인 탈무드를 먼저 읽었는데, 이건 유대인들에게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탈무드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내용 중에 나치가 나오고 있으니, 이건 현대에 변용된 탈무드에 불과하다는 생각. 어떤 탈무드가 있을까 하다가 도서관에서 보게 된 것이 바로 이 책.

 

'유태인(요즘은 유대인이라고 하는데, 이 책에는 이렇게 유태인으로 되어 있다)의 생각하는 방식을 배우게 하는 책'이라고 하는데... 삼성 문고와 겹치는 내용도 있지만, 처음 보는 내용도 있다.

 

역시 짤막한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책이 발간되어 있는데, 이 책의 맨 뒤에 있는 '탈무드에 대하여'를 보니, 탈무드는 바빌로니아의 탈무드와 팔레스타인의 탈무드가 있고, 바빌로니아의 탈무드가 더 권위 있고 중요시되고 있다고 한다.(이 책 281쪽)

 

그런데 그 앞쪽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탈무드는 단순한 책이 아닌, 심오하고 방대한 문학이다. 1만 2천 페이지에 달하는 탈무드의 방대한 내용은 기원전 500년부터 기원후 500년까지 구전된 내용을 2천 명의 학자들이 10년 동안 편찬한 것이다.'(278쪽)

 

이게 뭔 말인가?

 

1만 2천 페이지라니? 그런 내가 읽은 이 탈무드는 뭐지? 그 많은 내용 중에 생각할 만한 이야기들을 발췌해서 실은 거란 말인가?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탈무드의 내용이 전부 들어있는 번역본은 없다는 얘긴가? 1만 2천 쪽에 달한다면 300쪽짜리고 책을 발간해도 40권이다. 엄청난 양이다. 그런데 시중에서는 달랑 한 권짜리 탈무드만 만나볼 수 있다.  

 

결국 탈무드는 내게 완전히 알 수 없는 책이라는 뜻이 되는 건데... 그런데 아니다. 굳이 탈무드를 처음부터 끝가지 읽는 것이 탈무드를 이해하는 것일까?

 

그것은 단지 지식에 불과하지 않을까? 탈무드의 첫 쪽과 끝 쪽을 백지로 놓아둔다는데, 이는 탈무드는 누구나 다시 쓸 수 있고, 또 채워넣어야 하는 책이라는 얘기가 아닌가?

 

굳이 프랙탈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탈무드의 부분을 정확히 이해했다면 이미 그것은 지식이 아닌 지혜가 되었을 터.

 

지혜가 되었다는 얘기는 머리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발현이 된다는 얘기. 이것이 바로 탈무드 아니겠는가.

 

그러니 탈무드를 굳이 완역할 필요가 없다. 탈무드에 나와 있는 이야기들을 통해서 삶의 지혜를 획득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책을 지혜롭게 읽는 법이다. 이것이 바로 탈무드가 가르치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온 이야기 하나하나를 그냥 아, 재미있네, 어, 이런 생각을 하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서 실현되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탈무드를 읽는 법이고, 그것이 바로 유대인들에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하는 책으로써의 탈무드 아니겠는가. 

 

이런 탈무드와 우리의 수능을 비교해 보자. 우리의 수능은 지혜가 아닌 지식만을 측정하고 있다. 이렇게 자라나는 미래 세대의 사람들에게 지혜가 아닌 지식을 강조하는 교육이 과연 바람직할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우리는 아이들에게 지식이 아닌 지혜를 가르칠 수 있을까? 이 책 탈무드에도 학교의 역할, 교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고 있는데... 우리는 과연 그러한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요즘, 다시 읽을 필요가 있는 책이다. 이 "탈무드"는. 

 

많은 이야기 중에 기억하고 싶은 글들을 아래에 몇 개 적어 놓는다.

질문과 대답


스승의 질문과 제자의 대답이다


"사람의 입은 하나인데 귀는 둘이다. 왜 그렇겠는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많이, 잘 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눈은 흰 부분과 검은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왜 검은 부분으로 세상을 보는 것일까?"

"그것은 세상을 어두운 면에서 보는 편이 좋기 때문입니다. 밝은 면에서 보면 지나치게 자신에 대해서 낙관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되기 때문에 그로 인해 교만해지지 않도록 경계하기 위함입니다. 29쪽

현인


한 사나이가 현인에게 질문했다.

"당신은 어떻게 해서 현인이 되셨나요?"


그가 대답했다.

"글쎄요. 식용유보다 등유에 더 많은 돈을 썼더니 현인이라 하더군요." 52쪽


나라를 지키는 학교


어떤 마을에 이웃나라의 유명한 학자가 찾아왔다. 그 마을의 대표가 그를 안내하여 안보 상태를 확인시켜 주었다. 변방을 돌아보니 어떤 곳에는 병사들이 들어 차 있는 작은 진지가 있고, 어떤 곳에는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그 마을의 대표가 그를 데리고 숙소로 돌아왔을 때 학자가 말했다.


"나는 아직 이 나라가 어떻게 지켜지고 있는가를 보지 못했습니다. 나라를 지키는 것은 병사가 아니라 학교입니다. 왜 나를 제일 먼저 학교로 데리고 가지 않았습니까?" 53쪽

선과 악


존경하는 스승에게 제자가 물었다.

"경건한 자가 사람들에게는 올바르게 살도록 강권하지 않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그들은 항시 착한 일을 행하고 올바르게 살도록 사람들에게 권하고 있지 않느냐?"

"그러나 악한 자가 사람들을 악한 짓을 하도록 유혹하는 쪽이 훨씬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또 사람들을 악한 짓을 하도록 꾀어들여 패거리를 늘리고자 할 때에 우리들보다도 더욱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일을 행하고 있는 사람은 혼자 걷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이라네. 그러나 나쁜 짓을 하는 자는 혼자 걷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지." 71쪽

마음

인간의 모든 기관은 마음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마음은 보고, 듣고, 걷고, 서고, 굳어지고, 부드러워지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화내고, 두려워하고, 거만해지고, 설득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부러워하고, 질투하고, 사색하고, 반성한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인간은 자신의 마음을 통제할 수 있는 인간이다. 174쪽.

교육

가장 위대한 랍비가 북쪽 마을을 시찰하기 위해 두 명의 랍비를 시찰관으로 보냈다. 두 랍비가 그 마을에 가서 말했다.

"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 사람을 만나서 좀 조사할 일이 있소."

그러자 그 마을의 경찰서장이 나왔다.

"아니오. 우리가 만나야 할 사람은 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오."

이번에는 수비대장이 나왔다. 그러자 두 랍비가 말했다.

"우리가 만나려고 하는 것은 경찰서장이나 수비대장이 아니라 학교의 선생님이란 말이오. 경찰이나 군인은 마을을 파괴할 뿐이오. 교육자들이야말로 진정으로 마을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소." 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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