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학생들의 참여수업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예전에 열린수업이니 협동학습이니 하는 것과 요즘에 유행하는 배움의 공동체, 또는 발도르프 교육, 프레네 교육 들을 총망라하여 수업에는 학생들이 참여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 주장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기억의 효율성
보고 들은 것의 50% 읽은 것의 10% 본 것의 30% 들은 것의 20% 말하고 행동한 것의 90% 말한 것의 70% - 12쪽
또 학습 피라미드를 보면
24시간 후 평균 기억률
강의 5% 읽기 10% 시청각 체험 20% 시험 30% 그룹토의 50% 실행 70% 설명하기 90% -13쪽
이 연구 결과들을 보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직접 참여했을 때 가장 잘 기억하고, 가장 오래 기억한다. 이점을 명심하고 우리나라 교육현장을 살펴보면 암담한 생각이 든다.
학생들의 참여보다는 교사의 일방적인 전달이 많고,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여 실험 실습을 하기보다는 책을 통해 일방적으로 전달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학습의 효율성을 따지는 일은 무의미하다. 학습의 효율성을 따지기 전에 이미 학습에서 학생들은 멀어져 있고, 이것이 한 때 학교붕괴, 교실붕괴라는 말까지 만들어낼 정도였다.
지금도 인문계 고등학교 교실에 가보면 학습붕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의 풍경이 펼쳐진다고 한다.
학습에는 흥미가 없는데 자연스레 그냥 고등학교, 그것도 자신의 특기를 살릴 특성화고에 진학할 성적이 되지 않아 인문계로 올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이 수업 현장에서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고, 학교 책상을 자신의 침대로 여기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모습을 보게 될 테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수업을 한다면 학습에서 멀어진 아이들을 다시 학습으로 끌어올 수가 있을텐데, 그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참여수업이라는 것이다.
교사 중심에서 학생 중심으로 수업의 중심을 옮기고, 학생들이 스스로 질문을 하고 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경험하게 하는 것. 그렇게 하게 위해 교사가 준비해야 한다는 것.
수많은 참여수업 사례들이 이 책에 나와 있다. 백화점 식으로 좋은 참여수업 방법들이 자신들의 성공담과 더불어 나와 있는데, 이들 중에 그 학교, 그 수업, 그리고 그 교사와 학생들에 맞게 응용하여 참여수업을 한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들이 제법 있다.
다양한 참여수업 방식들이 나와 있으니 수업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교사라면 참조할 수 있을 방법들이 많이 있다. 그게 아마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무언가 좀 아쉬운 게 있다.
논어에서도 첫 시작이 바로 배움이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몇 천 년 전 동양의 성인도 자신의 책을(물론 제자들이 엮은 것이지만) 배움으로 시작한다. 배움으로 시작한다는 얘기는 우리 인간은 본질적으로 배움을 추구한다는 얘기고, 배움이 없이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게다가 가르침으로 시작하지 않고 배움으로 시작한다는 얘기는 교육의 주체는 바로 학생이어야 한다는, 학생들이 스스로 참여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하여 예전에는 스승을 찾아 학생들이 여러 곳을 다니기도 했는데, 그만큼 예전에는 교육의 주체가 학생에게 있었다는 얘기다. 이런 학생들에게는 교사의 교수법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직 교사의 학문적 능력, 인품 등이 문제였을 뿐이다.
왜냐하면 이미 자신은 배우고자 하는 욕구로 꽉 차 있었기에 배우고자 하는 욕구를 불러일으켜야 하는 교수법이 필요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게 아니다. 최근에 교육의 중심을 학생으로, 배움으로 옮기자는 논의가 있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교육에서 교육의 중심은 교사다.
이렇게 참여수업을 이야기라는 책이 나오는 것 역시 교육의 중심이 교사라는 얘기다. 교사가 학생들이 배움을 자신의 욕구로 만들게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중심에 놓고 책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흥미, 적절한 보상, 여기에 성적 향상... 이 세 가지 요소가 갖춰지지 않으면 제대로 된 수업이 아니게 된다는 느낌을 받게 만들고 있다.
하여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평가가 바뀌지 않는 수업방법의 개선은 학생들에게 진정한 배움으로 가게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렇게라고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게 하는 수업이 늘어난다면 점차적으로 평가도 바뀔테니, 이런 수업방법이 문제가 있기에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더 장려하고 강조하여 이런 수업방식이, 학생들이 참여하는, 수업의 주체가 교사가 아닌 학생들이 되게 하는 수업이 늘어나게 해야 한다. 그러면 이런 수업방법에 맞게 평가방식이 바뀔 것이고, 평가방식이 바뀌면 또 수업방식도 바뀔 것이고, 자연스레 우리 사회의 교육에 대한 관념도 바뀌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학력만을 중시하는, 공부 못하면 사람대접 못 받는 사회적 분위기가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들이 들었는데... 심호택의 시가 생각났다. 적어도 이런 교육을 하는 부모가 사라지는 사회, 그리고 그런 교육이 잘못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
똥 지 게
우리 어머니 나를 가르치며
잘못 가르친 것 한 가지
일꾼에게 궂은일 시켜놓고
봐라
공부 안 하면 어떻게 되나
저렇게 된다
똥지게 진다
심호택, 하늘밥도둑, 창작과비평사, 1996년 초판 7쇄. 5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