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그림을 본다고 하지 읽는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옛 그림을 볼 때는 본다는 말보다는 읽는다는 표현을 더 많이 쓴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김정희가 제자인 이상적에게 세한도를 그려주자, 이상적은 그 그림을 읽는다고 표현을 했다.

 

읽는다. 왠지 문자에만 쓰여야 할 것 같은 이 말을 그림에 쓰는 이유가 뭘까?

 

그 점에 대해서 알게 해주는 책이 바로 이 책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이다.

 

그림은 우선 보아야 한다. 보아야 읽던지 말던지 할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자신의 마음 속으로 끌어들여와야 한다.

 

마음 속으로 끌어들여와 그림과 대화를 하기 시작해야 한다. 책과의 대화는 곧 책읽기고, 그림과의 대화는 그림 읽기라고 보면 된다.

 

대화를 할 때는 상대를 알아야 한다. 또 상대를 배려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상황을 알아야 하고, 자신이 어떤 표현을 할지 가늠해야 한다.

 

나만이 아니라, 또 나와는 상관없이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라 나와 대상이 함께 관계맺으면서 무언가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대화다.

 

이런 대화를 그림과 한다면 그것은 훌륭한 읽기다! 그림을 제대로 읽은 것이다.

 

그림을 그린 화가를 읽고, 그림을 그릴 당시의 사회를 읽고, 문화를 읽고, 사상을 읽고, 그림 표현을 읽고, 자신의 시대를 읽고 함께 대화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옛 그림 읽기다.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이다.

 

옛 그림을 읽어갈수록 더욱더 풍부해지는 지식, 풍요로워지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옛 그림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짐도 자연스레 느끼게 되고.

 

이 책에는 우리에게 낯익은 그림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소개가 무슨 시험에 나오는 지식 위주의 소개가 아니라, 정말로 옛 그림과 대화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소개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그 그림을 다시 보게 되고, 그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고, 어느덧 그림이 자신의 마음 속에 들어와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림을 처음에는 눈으로 보기만 했으나 이제는 그림 너머를 보게 되고, 다시 그림을 보게 되어 그림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 단지 그림과만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린 화가와도 대화를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이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함께 어울리며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이 책에 나온 그림을 순서대로 나열해 본다.

 

김명국의 달마도, 강희안의 고사관수도. 안견의 몽유도원도, 윤두서의 자화상,

김홍도의 주상관매도, 윤두서의 진단타려도, 김정희의 세한도, 김시의 동자견려도, 김홍도의 씨름, 무동, 이인상의 설송도, 정선의 인왕제색도

 

이렇게 총 11편을 읽게 되는데, 11편으로 나누었지만, 김홍도의 씨름과 무동이 한 편에 있으므로, 실질적인 그림은 12편이고, 이 그림들을 읽어가면서 관련되는 그림들이 많이 나오기에 실질적으로 12편의 그림을 중심으로 많은 옛 그림들을 읽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여기에 더해서 책의 뒷부분에 중심이 되는 12편의 그림을 더 크게 실어놓았으니, 책을 다 읽고, 다시 이 그림들을 보면서 그림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더 좋다.

 

자꾸 보아야 보인다고, 보여야 좋아하게 된다고, 좋아해야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즐길 수 있게 되니, 우리 옛 그림들 자주 보아야 한다. 우선 자주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좀 높다고 생각되는 옛 그림을 볼 수 있는 박물관, 미술관들의 문턱이 조금 낮아졌으면 좋겠다. 나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쉽게 자주 볼 수 있게.

 

덧글

 

이 책에 나오는 그림들을 넣고 싶으나 직접 사진을 찍지 못하고 있고, 또 다른 곳에 있는 사진을 끌고오느니, 그냥 제목만 보고 검색해 보면 언제든지 그 이미지는 볼 수 있으니...생략. 모니터의 이미지보다는 직접 보는 것이 훨씬 좋을테니 또 생략.

 

'동자견려도'를 그린 사람 이름을 김시라고 했는데, 학자들마다 이름이 다르다고 함. 어떤 이는 제, 어떤 이는 지, 어떤 이는 시라고 하는데, 김시라고 하는 편이 옳다고ㅡ위창 오세창의 예까지 들어가면서 165쪽에서 주장하고 있음.

 

혹시 김제의 '동자견려도'나 김지의 '동자견려도'라는 말이 나오면 그들이 김시라는 점을 명심하면 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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