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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여행
버트 헬링거 지음, 박이호 옮김 / 고요아침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헬링거의 글은 길지 않다. 짧은 글들이 단락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글을 읽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줄거리를 가지고 내용을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각 글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기는 하지만, 각 글들은 또한 독립되어 있다. 마치 우리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지만 독립된 개체로 존재하듯이.
읽다보면 도대체 맥락을 찾기 힘든 내용들이 도처에서 나온다. 그것은 그의 글들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를 글로 표현해 냈기 때문이다. 마치 불교에서 선(禪)의 화두처럼.
불교의 화두가 맥락을 제거한 말을 통해 깨달음을 얻으려고 치열하게 고민하듯이, 헬링거의 글들도 맥락 속에서 무언가를 찾기보다는 그 말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깊고 넓게 고민해봐야 한다. 그런 고민을 통해서 그 말이 왜 나왔는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내면에서 느낄 수 있다.
'태초에 말이 있었다.' 이런 말이 있다. 말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세계와 함께 존재하고, 신과 함께 존재했다는 말로 읽힌다. 이 말은 신의 마음을 우리에게 전달해주는 역할도 한다. 그래서 말을 통해 신에게 가까이 가기도 한다.
그가 가족세우기 치료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바로 이러한 신적인 언어이다. 신적이라는 표현이 거슬린다면 영적인 언어라고 하자.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서 나온 언어.
이 책을 읽으면서 네 단어가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영(영적), 거리, 공명, 가족세우기.
가족세우기라는 말은 이 책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가족세우기를 거의 처음으로 실시한, 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실시한 사람이 헬링거이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을 가족세우기와 연결시키려는 내 마음의 작용때문에 이 말이 내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영'이라는 말. 이를 '신'이라는 말로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영'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영'을 믿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영'을 믿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고, 한 세상을 살아갈 때 이 '영'이 자신의 삶에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영'을 믿는다면 막 살지는 않는다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영'이라는 존재를 사람들이 믿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영'들은 자신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한다. 즉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거리를 잃은 '영'들, 자신의 자리를 잃은 '영'들은 우리들을 병들게 한다. 우리들을 힘들게 한다. 그래서 이 '영'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적절한 거리를 두게 하는 것이 가족세우기 치료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적절한 거리를 두고 있는 '영'들은 공명을 통해 하나가 된다. 하나가 된다는 말, 그냥 하나로 합쳐진다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특성을 지니면서 다른 존재와 어울린다는 말로 이해하면 된다.
이런 하나됨, 이것이 바로 '공명'이다. 공명은 넓고 깊게 이루어진다. 결코 강요가 아니다. 내가 울릴 때 남들도 함께 어울려 울리는 모습, 이것이 바로 공명이다. 이런 공명이 잘 이루어지면 병이 없게 된다.
가족세우기 치료는 이러한 영들이 제 자리에서 적절한 거리를 두고 함께 공명하게 만드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며 했다.
헬링거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느낌은 받았다고나 할까.
한 구절 한 구절 천천히 읽으며 마음 속에서 계속 음미하는 것이 좋은 책이라는 생각. 가족세우기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 기반이 되는 헬링거의 생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내면의 여행에서 조심해야 할 것. 그것을 '문지방'이라고 표현했는데, 이 문지방, 즉 장애물 중에 가장 큰 것이 바로 선과 악, 정의와 불의에 대한 우리 생각이라고 한다. 많이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가장 높게 세워진 문지방은 무엇입니까? 그건 선과 악, 정의와 불의에 대한 우리의 상상입니다. 이 상상들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여, 우리 내면의 여행에서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더 좋다거나, 우월감을 갖는 한, 모두에게 같게 작용하여, 같은 호의로 향하고 있는 그 영적인 움직임은 우리의 영혼과 마음에서 저 깊이 우리를 덮치지 않습니다. 221쪽
어떤 일을 할 때, 특히 내면의 여행을 할 때 자신만의 기준을 지니고 가려고 한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내면 여행을 할 수 없다는 말로 들린다. 우선 자신을 놓는 연습부터 하고, 놓아진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여행을 해야 한다는 말.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