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살고 싶은 집은 - 건축가 이일훈과 국어선생 송승훈이 e메일로 지은 집, 잔서완석루
이일훈.송승훈 지음, 신승은 그림, 진효숙 사진 / 서해문집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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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 하는 공간이다. 과거에는 집에서 태어나 집에서 죽었다. 지금은 병원에서 태어나 병원에서 죽는다는 말이 맞는 시대이긴 하지만 병원 역시 집의 한 형태이니 우리들은 집을 떠나 살 수 없다.

 

하다못해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는 사람들도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어서 자고 있지 않은가. 이것 역시 일종의 집이다.

 

그런데 이런 집에 대해서 우리는 자기가 도대체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을까 고민을 하지 않는다. 이미 주어진 집 중에서 마음에 드는 집을 골라 들어갈 뿐이다.

 

그 집에는 내 노력이 들어가 있지 않다. 물론 집 안을 꾸미는 일에는 자신의 노력이 들어가 있다고 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공간을 채울 뿐이니 논외로 하자.

 

그냥 살 뿐이다. 어떤 이는 교통이 편하다는 이유로, 어떤 이는 평수가 넓다는 이유로, 어떤 이는 주변 환경이 좋다는 이유로, 어떤 이는 교육하기 편하다는 이유로 이미 존재하고 있는 곳에 들어가 살다가 다시 떠난다.

 

집은 나의 일부가 아니라 그냥 스쳐지나가는 존재가 된다.

 

그러나 옛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집은 자신이었다. 집은 바로 자신을 보여주는 거울이었다. 그리고 조금 더 큰 자신 속에 자신의 몸을 들이는 공간, 집과 나는 둘이 아니라 하나였다.

 

하여 집에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집에 얽힌 이야기. 이야기와 더불어 집은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함께 해왔다.

 

이런 집을 갖고 싶다는 소망. 주어진 집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집을 짓고 그 곳에서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국어 선생이 건축가를 만나 서로 이야기하면서 만들어간 집 이야기.

 

이것이 바로 이 책 "제가 살고 싶은 집은..."이다.

 

국어선생 송승훈이 장현이라는 곳에 땅을 구입하여 자신이 살 집을 짓고자 이일훈이라는 건축가를 찾아간다. 건축가는 주택을 짓는 일이 손은 많이 가나 이익은 남지 않는 일이라 망설이지만 건축을 의뢰한 국어선생을 보고 집을 설계하기로 한다.

 

대신 메일로 집에 대한 생각을 주고 받으며 집에 대한 상을 만들어가기로 한다.

 

이 책은 집을 짓기까지 건축주인 국어선생과 건축가가 주고 받은 메일을 모아 놓았고, 간간히 집에 대한 사진을 넣었다.

 

하나의 집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알 수 있는 책이고, 건축을 의뢰한 사람이 어떤 집을 원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알아가려는 건축가의 모습을 알 수 있고, 그리고 추상적으로 집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던 것이 건축가와 대화하면서 점점 구체적인 모습을 잡아가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집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책인데... 읽으면서 나도 이렇게 집을 짓고 싶다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만의 집을 갖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집의 이름을 '잔서완석루'라고 지었다고 한다. 화려하지 않고 세월의 무게를 그대로 받아들인 집이 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결국 집은 사람이 사는 공간이고, 사람과 더불어 함께 늙어가는 것이 집이니... 집 이름도 좋다.

 

이 집을 짓는 과정에서 집에 살 사람이 무엇을 가장 원하는지, 그리고 그 원하는 것이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데, 국어선생답게, 아니 국어선생 중에서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인 집주인을 위해 서재를 집의 가장 끝에 두어 서재까지 가는 동안 집 곳곳에 주인의 손길과 눈길이 머물게 설계하는 모습... 그리고 책길이라는 개념을 두어 서재까지 가는 길에 책을 볼 수 있는, 산책길이 아닌 책길을 만들어내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게 다가왔다.

 

집은 결국 사람과 함께 갈 수밖에 없음을 이 책은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이 집에 살게 된 국어선생은 나중에 이런 말을 한다. '시멘트로 한옥을 지었다'(316쪽)고.

 

전통을 잇는 건축방법에 세 가지가 있다고 국어선생은 분류하고 있는데(물론 이는 건축학적 분류가 아니라 국어선생다운 분류다) 하나는 형태를 계승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재료를 계승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공간을 계승하는 것인데...

 

자신은 한옥의 공간을 계승했다고. 그래서 시멘트로 지은 한옥에서 산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

 

집을 짓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집에 대한 사랑. 건축주와 건축가의 신뢰와 소통. 이것이 결국 그 장소에 어울리면서 그 사람에 딱 맞는 집이 탄생하지 않았나 싶다.

 

이 집은 국어선생이 살아가면서 함께 늙어갈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러운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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