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을 보다.

 

 올해 가장 인기 있는 영화가 될 듯하다. 한 시간이나 여유를 두고 영화관에 갔음에도 앞자리의 표를 구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이순신.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인물 아닌가? 어린 아이에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이순신 장군, 또는 세종대왕 아니던가.

 

  그런 그가 백의종군 끝에 겨우 12척이 남은 상태에서 일본 수군과 결전을 벌인 곳, 그곳이 바로 명량(울돌목)이고, 그 유명한 명량해전이다.

 

그는 12척이라고 했는데, 어찌 어찌 13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 배와 맞서 일본 배 31척을 격침했다고 나와 있다. 적어도 내가 읽은 책에서는.

 

배의 숫자가 무에 중요하겠는가. 압도적인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대승을 거두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전쟁이었음에는 틀림 없다.

 

이를 영화로 만들었어야 하는데, 좀 늦은 감이 있다. 물론 이순신에 관한 드라마나 영화는 많이 있지만, 이렇게 특정한 한 해전을 중심으로 영화를 만든 적은 없으니... 지금이라도 영화로 만들어졌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명량해전에 대해서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왜 불편했을까? 역사에서도 영화에서도 이순신은 이 명량에서 대승을 거두는데, 그래서 발음이 비슷한 명랑한 기분이 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명량"에도 가보았고, 거기에 있던 우수영도 보았고, 직접 그 울돌목이 얼마나 거센지도 눈으로 확인했는데...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적을 섬멸한 이순신의 지략에 감탄하기도 했는데...

 

이번에 영화는 꼭 그렇지가 않았다. 영화의 두 대사가 맘 속에서 계속 맴돌았기 때문이다.

 

하나는 충성(忠)이라는 말. 무에 잘난 임금이라고, 그렇게 아버지를 핍박한 임금에게 왜 충성하느냐고 하는 아들의 질문에 이순신은 답한다. 자신의 본분은 충이라고. 그런데 그 충은 바로 백성을 향하는 것이라고.

 

우리는 흔히 충성이라고 하면 임금에 대한 충성을 떠올린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순신은 말한다. 충성의 방향은 바로 백성들을 향한 것이라고. 백성들을 향해야 한다고. 그들에게 충성을 다해야 한다고.

 

이 대사가 마음을 울렸다. 충이라는 말이 마음에 중심을 잡는다는 말이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의리'란 얘기다. 그런데 그 '의리'가 누구를 위한 의리인가?

 

당연히 임금이라고 생각하고 보았던 기대를 백성이라는 말로 확 깨버린다. 그렇다. 양반들, 사대부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 그들이 충성을 해야 할 대상은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지배층이 아니라, 자신을 그 자리에 있게 만들어준 백성들이다.

 

영화의 대사는 이것을 환기시켜준다. 하여 명량(울돌목)이 있는 진도가 떠올랐고, 진도 부근에서 일어났던 대참사가 마음에서 다시 밖으로 나왔으며, 최근에 어떤 국회의원이 농성중인 희생자 가족들에게 했다는 말, '노숙자'같다는 말이 떠올랐고, 그는 도대체 누구에게 충성을 하는가? 그의 충성 대상은 누구인가? 하는 생각. 적어도 국민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 이런 젠장...

 

두 번째 대사는 승리한 뒤 아들이 다시 그렇게 될 줄 알았느냐는 질문에 "천행이지"라고 이순신이 말한 대답. 아들은 회오리가 천행이냐고 묻는데, 이순신은 "백성들이 자신을 구해준 것이 천행"이라고 답한다.

 

천행... 하늘이 내린 행운. 그게 천행이었을까? 그렇게 진심을 다해 백성에게 충성하는 한 장군의 모습을 백성들이 외면하기만 할까? 아들은 백성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고 있다고 영화 초반에 말했지만...그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았던 백성들이 스스로 나서서 장군을 구한다.

 

백성들이 이순신이 탄 대장선을 바다의 회오리 속에서 구해내는 장면은 영화적 상상력이겠지만, 실제로도 이런 백성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이순신의 "명량"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역사적인 사실에 의하면 명량해전에서 12척(혹은 13척)의 배 뒤에 민간인 배들이 도열해서 세를 과시하고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즉, 이순신이 지닌 배는 달랑 12(또는 13척)척이 아니라 백성들이 지니고 있던 그 배들을 모두 포함한 감히 숫자로 헤아릴 수 없는 배들이었던 것이다.

 

백성을 뒤에 엎고 있는 장군을 누가 이길 것인가?

 

마찬가지로 이렇게 국민에게 진심으로 충성을 다하고, 그 진심을 국민들이 알아주어 지지해주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가 어떻게 정치에 실패하겠는가? 이런 생각이 영화가 끝나고도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1597년의 이순신은 역사 속의 이순신으로만 남아서는 안된다. 왜 그가 그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는지, 단지 지형지물을 이용한 지략의 승리라고만 생각하고 넘어가서는 "명량"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영화다.

 

진정한 "명량"의 모습은 백성을 위해서 진심을 다하고, 그 진심이 백성과 통하는 그런 장군의 모습인 것이다. 백성과 하나된 장군... 이것은 질래야 질 수 없는 싸움인 것이다.

 

2014년으로 바꾸자. 아니, 그 뒤라도 좋다. 어떤 정치인이 성공하는가? 답은 이 "명량"에 있다.

 

영화 "명량"에서의 진도는 지금 "진도"와 겹쳐 있다.  

 

덧글

 

이순신에 관한 많은 책이 있는데... 사실 가지고 있는 책은 거의 없다. 그냥 어떻게 알게 된 내용들 뿐인데...

 

오면서... 자꾸만 이순신의 반대편에 있던(물론 영화에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아들의 대사로 등장할 뿐이다) 선조가 생각났다. 그 선조를 통쾌하게 욕하고 있는 책.

 

예전에 참 재미있게 읽었다.

 

내가 평가하는 왕에 대한 모습과 비슷해서였을까?

 

아니면 적어도 왕에 대해서 이렇게 신랄하게 욕을 할 수 있는 역사책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을까.

 

아무튼 논쟁이 되는 책이지만, 백성들이라면 정말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은 내용들이 많다.

 

백성을 중심에 두고 판단을 한다면, 이순신과 선조는 대척점에 서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인은 어떤 정치인인가 하는 생각. 이런 생각이 나를 떠나지 않고 있다.

 

명량해전을 다룬 영화 "명량"을 보고, 지금 우리의 정치를 생각하다니...

 

백지원, 왕을 참하라(상.하)-백성 편에서 본 조선왕조실록. 진명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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