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도 목이 마르다 - 이원규 시집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76
이원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이 시집의 해설을 보면 이원규 시인을 '길'의 시인이라고 한다. 그가 걸은 거리만도 엄청날텐데, 단지 걸은 길이 길다고 해서 길의 시인이라는 말을 붙이지는 않았으리라.

 

길은 과정이다. 끝이 아니다. 계속 되어야 하는 진행형. 그러나 계속 가야만 하는 쉬임이 없는 움직임이 아니다. 길은 자체로 쉼터이다. 움직임이자 쉼터. 그것이 바로 길이다.

 

하여 길은 움직일 때 움직이고, 쉴 때 쉰다. 길이 이 역할을 못할 때 그 길은 죽은 길이다. 이미 길이 아니다. 길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똑같은 길이 아니다.

 

쉼이 없는 길. 곧 떠오르지 않는가. 바로 지금 우리들이 가고 있는 길이다. 삶의 길이기도 하고, 문명의 이기를 통해 가는 길이기도 하고.

 

이런 쉼이 없는 길은 곧 막힌다. 끝에 도착하기 때문이다. 계속 이어지지 않고 어디선가 멈춰야만 한다. 이것이 현대의 길이다. 현대인의 길이다.

 

이 시집을 읽으며 이 시집은 첫번째 실린 시로 됐다고 생각했다. 그 시에서 맘이 딱 멈췄다. 나머지는 길이다. 가다 쉬고 쉬다 가고 또 가고 쉬고 하는 길.

 

하여 이 시집은 하나의 길이 된다. 시를 읽는 사람에게.

 

족필(足筆) 

 

노숙자 아니고선 함부로

저 풀꽃을 넘볼 수 없으리

 

바람 불면

투명한 바람의 이불을 덮고

꽃이 피면 파르르

꽃잎 위에 무정처의 숙박계를 쓰는

 

세상 도처의 저 꽃들은

슬픈 나의 여인숙

 

걸어서

만 리 길을 가본 자만이

겨우 알 수 있으리

발바닥이 곧 날개이자

 

한 자루 필생의 붓이었다는 것을

 

이원규, 강물도 목이 마르다. 실천문학사. 2011년 초판 5쇄. 11쪽

 

이 시다. 첫번째 시가.

 

우리의 인생이 발로 쓴 삶이라는 사실. 결국 내가 걸어온 길이 내 삶의 길이었음을 시는 이야기하고 있는데... 발로 걸어서 가는 길. 그것은 어느 하나도 소홀히 여길 수 없는 길이다.

 

길 가에 있는 풀꽃부터 시작하여 발바닥에 닿는 흙, 돌멩이까지, 그리고 눈으로 보는 머언 별들까지도 다 길 위에서 만날 수 있다.

 

하여 우리는 길에서 살고 길에서 죽는다. 이 길에 대한 생각. 발로 쓴 글... 발로 쓴 삶.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 나아가 생각해 보니 세상은 온통 길이다. 길로 이루어져 있다. 길이 없으면 그것은 죽음이다. 아니, 죽음조차도 길로 이어져 있다. 우리는 죽음을 끝이라 하지 않는다. 다른 길로 갈 뿐이라고 한다.

 

이런 길을 가로막는 길이 있으니, 그것은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길이다. 탐욕으로 자연을 막고 있다. 자연스럽지 않다. 어색하다. 그러니 다시 길을 내기 위하여 걸어야 한다. 길은 걸어야 한다. 길에 발바닥이 닿아야 한다. 발바닥이 닿지 않는 길, 문명의 길, 탐욕의 길을 벗어나야 한다.

 

한 때 언론에서 일본인들이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산 곳곳에 박아두었다던 철침을 뽑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다. 우리나라 길들을 막는 철침. 그것에 우리는 분노하고,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된다고들 했었다.

 

그런데 철침보다도 더 무서운, 더 안 좋은 것들로 길을 가로막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무엇인가. 그것은 탐욕에 가려져 진보로 인식되기만 하는데... 결코 그것이 아님을 이 시집을 읽어보면 알 수 있게 된다.

 

시집의 말미에서 이문재 시인은 이원규 시인을 일컬어 시보다 큰 삶을 사는 시인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 군 단위의 길들을 거의 다 걸었다고 한다. 걸으면서 자연과 하나되는 삶, 인간 탐욕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그는 깨달았으리라.

 

그렇다고 이 시집이 현대 문명을 비판만 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길에서 만날 수 있는 일들을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자연과 하나되는 삶을 보여줌으로써 현대 문명의 탐욕에 더 도드라지게 만들고 있다.

 

자연스레 한 쪽을 비판해서 다른 쪽에 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쪽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런 삶을 살 수 있음을 은연중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래서 이 시집을 읽으면서 마음이 포근해졌다. 마치 고요한 산 속에서 맨발로 산자락을 걸으며 자연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벽소령 안개 사우나'나 '탁좆'이라는 시를 보라. 웃음이 머금어지면서도 마음이 편해진다. 그리고 지리산의 바람이 내 몸을 스쳐지나가는 듯 시원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게 이 시집의 매력이다.

 

시집을 덮고 생각해 보니, 우리 몸 자체가 길이다. 우리 몸이 온갖 길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스러운 길들. 그 길들이 막힐 때 그것이 바로 암이다. 온갖 현대질병이다. 그러니 세상의 길은 곧 우리 몸의 길이다.

 

암세포가 주위를 고려하지 않는, 자신의 기억을 잃은 세포라면 현대인의 탐욕은 바로 이런 암세포와 같다.

 

암세포가 어떻게 우리 몸의 길을 파괴하고 우리를 파멸로 이끄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암세포의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거나, 또는 없애려고 한다.

 

'길'도 마찬가지다. 길은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 길이 자신의 길을 가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그 길에서 우리는 가다 쉬고 쉬고 가다를 해야 한다. 그게 바로 길도 살고 우리도 사는 길이다.

 

따뜻하다. 이 시집. '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