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성석제 지음 / 강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은 개정판이다. 초판은 읽지 못했다. 개정판에 있는 초판 서문에 보면 작가는 본래 시를 쓰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물론 나는 성석제의 시를 읽지 못했다. 나는 처음부터 그를 소설가로 알고 있었다)

 

그러다 '94년 여름에는 노래가 아닌, 무슨 말인지 나도 모를 시를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되었다.'(8쪽)고 했다. 시가 노래가 되지 못하고, 무슨 암호처럼 유통되는 시대를 견디지 못했나 보다. 시를 견디지 못한 작가는 소설을 쓰기로 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 때문에 문(文)을 쓰려고 했다. 내게 들어 있는 산문, 산문성을 모조리 토해내면 노래만 남지 않겠는가 하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8쪽)고.

 

이 서문이 왜 중요하냐면 이 소설집은 우리가 생각하는 소설집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소설집을 생각하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가는 첫 장부터 낭패하기 십상이다.

 

이게 무슨 소설이야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처음 작품부터 읽는 사람을 당혹스럽게 한다. '웃음소리'에 대해서 모아놓은 생각을 펼치는 소설이라니...

 

하지만 소설을 말 그대로 소설(小說)이라고 생각하면, 또 작가가 서문에서 말한 文이라고 생각을 하면 이 작품을 이해 못할 것이 없다. 그냥 이야기다. 文이다. 이것이 바로 이 작품집이다.

 

작가의 내면에 있는 이야기들을 내뱉어 놓은 것. 이것이 바로 이 소설집이라고 하면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 속에서 '어처구니'(사전에는 상상보다 큰 사람이나 쿨건이라고 되어 있다고 한다)를 발견하게 된다.

 

내 삶이 소설로 쓰면 장편소설이라느니, 대하소설이라느니라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바로 우리의 삶 속에도 이렇게 소설이 들어있는데, 이 작은 이야기들 속에 우리가 알고 있는 소설이 들어 있다.

 

이 작품집의 이야기들은 작지만, 그들은 그들 속에 '어처구니'를 갖고 있다. 이 어처구니들이 활동을 개시하면, 밖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면 그것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소설이 된다. 그렇게 성석제는 이들을 '어처구니'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성석제란 소설가를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몇몇 작품을 읽었을 때 이러한 수식어가 그냥 붙은 것은 아니구나 하고 감탄을 하기도 했었고.

 

이 작품은 그 정도는 아니다. 사건과 갈등과 인물의 성격 등이 구체화되기에는 다들 분량이 짧다. 그냥 작가의 내면에 있던 이야기들을 밖으로 끄집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마음 속에 쌓아두고 있었던 수많은 이야기들을 남들도 알게 표현해 낸 책이 바로 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의 이야기꾼으로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주 잘 드러나고 있다. 때로는 짧은 분량 속에서도 이야기의 재치가 번뜩이고 있다.

 

우리 사회의 모습을 적절하게 풍자하고 있기도 하고, 이 소설집이 나온 지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유효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작품들도 꽤 있다. 어쩌면 한 때 유행했던 용어인 '엽편소설'이라는 말을 붙여도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소설집이기도 하다.

 

그냥 예전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시를 제외한 다른 산문을 모은 산문집이라고 해도 상관이 없을 듯하고.

 

많은 작품 중에 현실의 비루함을 비꼬거나 정치권력의 일방성을 풍자하거나, 또는 그런 권력에 추수하다 패가망신한 사람을 등장시키거나, 권력에 맞섰으나 자신이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을 형상화하는 작품들은 이들 속에 '어처구니'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다른 작품들 속에서 이들이 어떻게 '어처구니'가 되었는지 알아보고 싶을 정도다.

 

아주 짤막한 작품들이 모여 있으니, 시간 날 때 한 편 한 편 그냥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 그 짧은 분량 속에서 우리가 '어처구니'를 찾아보는 재미도 느끼면 더욱 좋을 것 같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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