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원죄라는 말이 있다. 내가 잘못된 행동을 하지도 않았는데 죄를 지니고 태어났다는 기독교에서 하는 말.

 

인간은 원초적으로 죄인이라고 하고, 이 원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의 품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1980년 5월 광주가 원죄로써 작동을 한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대가 오히려 국민을 학살한 사건. 민주주의를 외쳤을 뿐인데, 당연한 권리를 주장했을 뿐인데, 그 당연한 외침이 폭력으로 진압당하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야 했던 5월 광주.

 

우리는 아직도 광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광주에서 벗어났을 때 그 때서야 비로소 민주주의가 정착했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될 터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가 겁났다. 솔직히 3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광주는 아직도 묵직한 아픔으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해결되지 않은 아픔, 비록 책임자들을 청문회도 하고 법정에도 세웠지만, 그들에게 책임을 지우지는 못했다.

 

국민을 학살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상규명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자들이 처벌을 받지 않은 현실. 그것이 원죄가 아니고 무엇이랴. 우리는 아직도 광주를 이어가고 있음이다.

 

이 광주가 올해는 세월호를 통해서 나타났고, 또다시 우리는 책임자를 처벌하지도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광주가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

 

하나의 사건을 철저하게 규명하고, 책임을 지움으로써 다른 일들을 미연에 방지할 수가 있는데, 하나의 사건이 유야무야 넘어가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게 된다.

 

이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소설이 편하게 읽힐 수는 없다. 작가의 필력으로 소설은 쉽게 읽히지만 읽는 내내 마음은 불편하다. 과거의 광주였으면 좋겠는데, 현재의 광주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광주를 온몸으로 겪은 사람들의 처지에서 서술된다. 첫부분이 동호라는 16세의 중3학생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특이하게 '너'라는 이인칭으로 서술이 되고 있다. 서술자가 16세의 동호가 되어 동호가 느꼈음직한 마음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고 해야 한다. 요즘 가끔 시도되는 그런 2인칭 소설기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작품 전체가 바로 이 동호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호 다음에는 동호의 친구인 정대의 입장에서, 아니 정대의 혼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젊음의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왜 자신들이 죽어가야 하는지, 군인들이 자신들을 왜 죽여야 하는지 물음을 던지는 정대. 여기에 정대의 누나 정미 역시 죽었다고 표현이 되어 있고.

 

정대 다음으로는 동호와 함께 시신 수습을 했던 사람인 김은숙이 나온다. 이 사람은 광주의 생존자다. 그럼에도 광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출판사 직원으로 일하면서 광주 직후의 검열 문제를 온몸으로 경험하게 된다.

 

다음은 김진수. 그는 생존했으나 살아있는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한다. 그 역시 동호와 함께 시신 수습을 맡았던 사람이고, 동호를 이끌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광주 진압 이후 고문과 또 그때의 일들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광주는 80년 5월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음을 그 다음 이야기의 주인공인 임선주를 통해서도 보여주고 있다.

 

국가권력으로부터 어떠한 폭력을 당했는지, 그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를 임선주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으며, 끝부분으로 가서 동호의 엄마가 등장하여 광주 유가족들의 아픔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왜 작가가 광주의 이야기를 글로 쓰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글이 나오는데, 이를 사실로 보아도 좋고 소설적 허구로 보아도 좋다. 그러나 어느 편이든 광주의 진실을 우리가 외면할 수 없음을 이 부분을 통해서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광주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광주민주화운동기념식에서 공식 가요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게 하고 있는 현재... 아직도 광주민주화운동은 빨갱이들의 운동이라고 선동하는 사람들이 있는 현재... 광주와 비슷한 일이 서울의 용산에서도 경기도의 평택에서도, 그리고 진도 앞바다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현재...

 

소설은 광주의 슬픔이 그냥 넘어가서는 안됨을 보여주고 있다. 얼마나 깊은 상흔들이 사람들을 제대로 살지 못하게 하고 있는지를, 그것이 우리 사회가 왜곡된 모습을 보이게 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읽기는 편하나 마음은 너무도 무거운... 그런 소설이다. 그럼에도 읽어야 한다. 상처는 글로써 치유될 수 있으니, 광주에 대한 글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많이 나와서 광주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우리를 각성시켜야 한다.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그렇게... 이 소설은 여기에 조금이나마 이바지하는 점이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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