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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입이 크다 - 교사 시인 박일환의 청소년시, 2014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도서 ㅣ 한티재시선 2
박일환 지음 / 한티재 / 2014년 7월
평점 :
박일환 시인의 동시집에 이어 청소년시집이 나왔다. 동시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연령이 높은 청소년들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는 시집이다.
굳이 청소년시집이라든지, 동시집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될텐데... 굳이 청소년시집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아마도 주요 내용이 청소년들의 삶과 생활, 그 중에서도 학교 생활에 중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고, 시를 잘 읽지 않는 청소년들이 시를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
교사이자 시인인 그는 시집의 시인의 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청소년시를 쓰는 이유
... 2010년에 박성우 시인이 쓴 [난 빨강]이라는 제목의 시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 10대들을 위한 첫 번째 청소년시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책이었습니다. 시집을 읽으면서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청소년들을 가장 많이 만나고 청소년들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들여다보고 있던 교사 시인이 아니라 일반 시인이 먼저 청소년들을 위한 시를 썼다는 사실 때문이었을 겁니다. 교사이자 시인으로서 일종의 직무유기를 하고 있었다는 자책감이 들면서 이제부터라도 청소년들을 위한 시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97쪽)
이런 이유로 청소년시를 쓰게 되었는데, 무엇보다도 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지내고 있는 시인은 학생들이 시에서 멀어지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웠으리라. 사실 우리는 국어 시간에 시를 우리의 감성을 풍부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배우지 않고 오로지 점수를 받기 위한 수단으로 배워왔다. 그것은 지금의 학생들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학생들에게 시는 어려운 것, 할 수 없이 해야 하는 것, 할 수만 있다면 배우고 싶지 않은 것이 되기 십상이다. 이를 시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시를 시로 대하는 게 아니라 문제풀이 대상으로 보게 되고, 더구나 자신의 고민과 전혀 상관없는 시를 억지로 배우는 동안 시는 나와는 상관없는 먼 나라의 주문 같은 것쯤으로 여기게 됩니다. (102쪽)
그렇다면 학생들이 시를 친숙하게 여기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시인이 말하고 있듯이 청소년들의 감성을 어루만져주는 시를 들려주는 것이다.
자신들의 이야기가 시로 표현되었을 때 학생들은 시란 자신들의 삶과는 관계가 없는 시험에나 필요한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한 방법으로써 시를 이해하게 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자신의 감성을 시로 표현할 수도 있게 된다. 시가 청소년들에게 다가오게 된다.
... 청소년시도 비슷하게 정의를 내려 볼 수 있겠습니다. 청소년들의 감성과 이해 수준, 그리고 그들의 삶에 밀착한 시라고 말이지요.(100쪽)
... 청소년을 위해서 씁니다. ... 청소년들이 조금이나마 시를 가까이하면서 마음에 담아 두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한편 청소년들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102쪽)
그렇다고 청소년시를 청소년들만 읽으라는 얘기는 아니다. 청소년시는 청소년들이 기본적으로 읽어야 하지만 어른들 역시 읽어야만 한다.
어른들은 청소년시를 읽으면 자신들이 잊고 있던 청소년시기를 떠올릴 수 있다. 자신의 청소년기를 생각해낼 수 있다. 하여 자연스레 청소년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아, 나도 그랬었지, 그래 요즘 아이들도 이렇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면에서 청소년시는 청소년과 어른들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시집은 청소년들의 학교 생활이 주를 이루고 있다. 교사이자 시인으로서 경험하고 느낀 청소년들의 마음을 청소년의 처지에서 표현해 내고 있다.
하여 우리들의 청소년시기, 학창시절을 떠올릴 수 있다.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떠올릴 수 있다. 또한 지금 아이들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청소년과 어른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는 시집이다. 아이들의 학교 생활이 궁금하다고? 이 시집을 읽어보라. 그러면 우리가 학창시절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지금의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제목이 된 시
학교는 입이 크다
저기 먹잇감이 오시네
줄이어 떼 지어 오시네
고래가 새우를 삼키듯
아침마다 큰 입을 벌려
꿀꺽, 꿀꺽, 삼키고는
아무 일 없었던 듯
침묵 속으로 빠져드는
학교는 입이 크다
너무 커서 말이 안 통한다
박일환, 학교는 입이 크다. 한티재. 2014년. 58쪽
이게 바로 학교다. 아니 청소년들이 보는 학교일 수 있다. 교사 시인이 학생의 입장에서 바라본 학교이기도 하다.
그렇담, 이 시는? 한 번 답을 맟춰보시라. 도대체 답이 뭘까? 어른들의 눈에 보이는 답과 아이들이 생각하는 답이 같을까?
시험 문제 형식으로 쓴 청소년시다. 기가 막히다. 슬프다.
정답이 뭘까요?
※ 다음 글을 읽고 '거기'에 해당하는 말로 가장 어울리는 것을 고르시오.
어른들이 말했습니다. "거기에 너무 매달리지 마라. 잘못하면 다칠 수도 있단다." 학생들이 대답했습니다. "매달리라고 만들어 놓은 거 아닌가요?" |
① 난간 ② 성적 ③ 옥상 ④ 놀이기구 ⑤ 그네
박일환, 학교는 입이 크다. 한티재. 2014년. 61쪽
이 시집에는 이런 시들이 참 많다. 어른들이 아니 교사들이 찔리는 시도 있고, 또 웃음을 터뜨리는 시도 있고, 아이들이 이렇구나 생각하게 하는 시도 있다. 마찬가지로 청소년들은 미처 자신이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들이 이 시들을 통해 표출되는 즐거움을 지닐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