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애니멀 - 인간은 왜 그토록 이야기에 빠져드는가
조너선 갓셜 지음, 노승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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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이야기다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줄인다면.

 

왜 우리는 이야기에 열광하는가, 아니 열광 정도가 아니라 우리 삶에서 필수요소로 이야기를 받아들였는가.

 

진화론을 생각하면 이야기는 우리가 생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기에 살아남았을 거고, 이것이 우리의 삶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야기가 없는 종족과 이야기가 있는 종족 중에 어느 종족이 살아남았을까? 답은 이야기가 있는 종족이다. 진화론을 거꾸로 역추적해 가면 우리가 지금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이야기가 있는 종족이 생존해 왔다는 증거도 될테니 말이다.

 

이런 식으로 이 책에서는 인간의 생존에 이야기가 어떤 유리한 점으로 작용했을 거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꾸는 꿈 역시 일종의 이야기이고, 이 꿈은 우리가 현실을 살아가게 하는 연습이 된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삶을 연습하듯이, 꿈 속에서도 우리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삶을 연습하고 있다고 한다.

 

꿈조차도 이야기가 되니, 우리의 기억은 당연히 이야기이다. 그것도 사실만을 나열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스토리를 지니기 위해서 우리가 창조해낸 이야기. 누가 자기의 기억이 전적으로 사실에 입각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이 책에서는 기억에 관한 실험 결과를 몇 가지 소개하고 있다. 시간이 흐른 뒤 똑같은 사건을 기억하게 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처음에 자신이 이야기한 것과 다르게 이야기한다고 한다. 그것도 더 많은 내용을 덧붙여서.

 

여기에 정신의학자 이야기도 나온다. 기억을 조작해서 그것이 마치 자신의 기억인양 믿게 만들었던 실험을 한 사람 이야기.

 

그러니 우리의 기억은 믿을 것이 못된다. 우리는 어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의도에 의해, 이를 균형을 맞추지 위해 또는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기억을 하나의 이야기로 다시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기억은 우리의 삶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이야기로 재창조되기도 한다. 그런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기본적으로 도덕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비도덕적인 것에 대한 비난이 우리의 유전자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여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그런 활동들이 우리의 도덕성을 함양하는데 더 도움이 된다고 한다. 사실 좋은 작품은 어떤 형태로든 인간의 삶에 대한 도덕적 윤리의식을 담고 있으니, 이 말이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검열을 통하여 책이나 영화들을 통제했는데, 이는 책이나 영화가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폭력, 선정성을 규제하는 것도 이야기가 우리의 도덕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들은 우리의 마음을 감화시켜 우리의 행동을 이끌어내고, 우리들의 행동이 결국은 사회를 바꿀 수 있게 된다.

 

이야기가 이렇게 우리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또 미래의 이야기는 종이책을 떠나 이제는 게임의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으니... 이야기는 우리 인간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관계에 있는 이야기에 우리가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대처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점 아니었을까.

 

재미 있게,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태초에 말이 있었다. 이 말은 태초에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이야기 자체이기도 하다는 말이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서는 신화는 물론이고 종교도 이야기로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결국 어떻게 이야기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가라는 질문은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야기하는 동물이기에 이야기는 바로 우리 인간의 삶이라는 말로 바꿀 수가 있고, 이런 이야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제대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덧글

 

충격. 충격. 작가와 작품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싶은, 사실인가 싶은.

 

너무도 감명깊게 읽었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이 책의 다른 번역본 제목은 '작은 나무야 작은 나무야'다)의 저자인 포리스트 카터의 본명이 아서 카트이고 할아버지가 체로키 인디언이어서 인디언 피가 섞이긴 했지만, 인종차별로 악명 높은 kkk단원의 리더라고 하니, 참... 아무리 작가와 작품이 달라도 그렇지 이거야 원.

 

'아메리카 원주민의 또 다른 유명 회고록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아서 카터라는 백인이 쓴 것으로 드러났다. (포리스트 카터는 필명이었다) 그는 '남부 연방 원조 큐 클럭스 클랜'이라는 민병대에서 리더를 맡기도 했다.' (196-197쪽)

 

그럼에도 이 책은 나에게 감명을 줬다. 또다시 읽고 싶은 책이기도 하고. 내 마음도 따뜻해지는 책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이야기의 힘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책에서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런 이야기들을 찾아서 읽고, 또 읽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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