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헌책방에 들렀다. 가끔 가고 싶기는 하나, 여유가 없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자주 가지는 못한다.
많은 책들이 첫주인을 떠나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 중에서 나와 인연이 닿는 책들은 어떤 것들일지... 그 많은 책들 중에 우연히 또는 이거다 싶게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다.
어떤 책은 작가의 이름만으로, 어떤 책은 제목으로, 또 어떤 책은 평소에 꼭 읽고 싶었던 책인데, 이래저래 미루다 사지 못했는데, 헌책방에서 만나게 되기도 한다.
이 책은 제목이다. 아니 작가도 안다. 이 작가의 같은 제목의 책을 읽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소설가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가 시를 쓰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알고보니 시집을 여러 권 내었다.
여러 권 낸 시집 중에 이 시집은 제목이 소설과 똑같다. 또 독일의 작가인 브레히트의 시집 제목과도 같고. 물론 내용은 좀 다르지만.
격동의 80년대를 거쳐오면서 겪었던 마음이나 행동들, 그리고 한 사람과의 사랑이 이 시집에 담겨 있다.
이미 지난 일들. 80년대... 멀다. 먼데 그런데 그 80년대에 벌어졌던 일들이 버젓이 2010년대에 벌어지고 있으니 참...
역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다.
세상이 변하지 않고 반복되고 있음을, 비극이 점점 더 심화되고 있음을, 예전에는 가난 속에서도 연대가 있고, 우정이 있고 행복이 있었다면, 이제는 가난은 연대와 우정, 행복을 모두 빼앗아 가고 있음을...
그래도 80년대는 미래를 보고, 희망을 지니고 살았던 시대라면 지금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현재에도 행복을 느끼기 힘든, 미래의 행복은 기대하기 더 힘든 그런 시대가 되지 않았나 싶다.
사회 안전망의 해체... 대형사고가 나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모습...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을 향해 나아가는 후안무치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 이 시집은 80년대 작가 개인의 감수성이 잘 녹아들어 있는 시집이지만... 지금 우리에게도 그러한 감수성이 살아 있어야 함을 생각하게 한다.
슬픔에 대한 애도... 그것은 잊음이 아니고 기억이고, 다시는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이제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빠져 있을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해야만 할 일이 있다는 인식을 해야겠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고 브레히트는 그의 시에서 말했지만... 그리고 슬픔에 빠졌지만, 강자든 약자든 살아남은 자는 살아남았기에 해야할 일이 있다.
그 일을 찾지 못하면 정말 '살아남는 자의 슬픔'이란 늪에 빠져 계속 밑으로 밑으로만 잠겨들 뿐이리라.
이제 살아남은 우리들... 우리들에게 주어진 일을 해야겠다. 그것이 진정한 애도가 될테니...
시들이 이미 지난 시절의 감성을 담고 있어서 굳이 인용할 필요는 없겠단 생각이 든다. 다만, 그 제목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들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노래하지 말고, '살아남은 자들이 해야 할일' 또는 살아남은 자들이 할 일'을 노래해야겠다.
이것이 진정한 애도다. 애도는 뒤로 가는 것이 아닌, 자신의 슬픔에만 빠져 있는 것이 아닌, 슬픔을 변화의 힘으로 바꾸는 일이다.
그러한 '애도'가 필요한 지금이다.
덧글
이 작가에 대하여 검색해 보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시인이 자신의 시와 행동을 일치시키지 못한 경우... 또는 변절이 된 경우. 어떤 경우일지 모르지만... 여하튼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이제 안녕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