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무거운 나날들이었다.
세상에 나서 무언가를 이루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데, 그럴 틈도 없이 어느 순간 세상을 뜨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더 이상 무엇을 할 수도 없는 상황.
이승과 저승이 참 멀리도 있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한 순간 이곳이 바로 이승이고 저승이구나 하게 만드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메멘토 모리!"
한 순간만 방심해도 죽음은 이렇게 우리에게 다가와 자신을 잊지 말라고 강요한다. 도저히 잊을 수 없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나는 바로 이 곳에 있다고 늘 죽음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데, 우리는 죽음에게 벽을 쌓고, 마치 죽음은 이 곳에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러다 순간, 그 벽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닫고, 다시 죽음을 이 곳에서 만나게 된다. 경계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이승의 길을 열심히 달리고 있었는데, 죽음의 길은 전혀 다른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승의 길을 달리다 보니 죽음의 길이 바로 눈 앞에 있었다. 아니, 죽음의 길로 들어서 있었다.
이런 일들...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더 많이 겪게 된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 하루하루 죽어간다는 것. 이승의 길을 많이 달리고 달려 죽음의 길을 만나게 된다는 것.
그렇기에 이승의 길을 달릴 때 더욱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한 순간 길을 바꿔버린 사람. 그런 사람을 애도하며, 다시 한 번 "메멘토 모리!"
경계, 무너짐
-삶과 죽음
선이 있다고
명확한 경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삶을 충실히 살고,
죽음을 향해 가야 한다고,
한 면과 다른 면이
같지 않다고,
만나지 않는다고,
선을 넘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안과 밖이
하나임을,
한쪽을 달리다 보면
이미
다른 쪽에 와 있음을
선과 선이
엉켜있음을,
삶이 곧 죽음인 것을
나이들어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런 일들과 더불어... 세상에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너무도 많이 일어나고 있으니, 이번에 읽은 황규관의 시집 "태풍을 기다리는 시간"에는 이런 죽음에 대한 시들이 있다. 그게 현실이니...
죽음들
귀신 따위는 믿지 않던 내게도
얼굴의 핏기를 싹 빼앗긴 이들이
매일매일 찾아온다
반복은, 심장을 두려움으로
천천히 진화시키는 힘인가
하얀 알약을 한 움큼 털어 먹고 죽고
유독가스를 울음처럼 울쩍이다 죽고
일가족을 태운 채 강물에 뛰어들어 죽고
고전적으로 공중에 목을 매단
숱한 죽음들이, 조간신문처럼
꼭 눈을 뜨면 찾아온다
전쟁을 치른 어머니의 공포가
유전된 것도 아닐 텐데
심지어 맞아 죽고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떠밀려 죽고
몽땅 방화된 죽음도 섞여 있다
비슷비슷한 내력으로
별다를 게 없는 설움으로
굴욕에 무너진 식은땀으로
자꾸 내 삶에 부벼대는 것이다
오늘도 부산의 조선소에서
어제는 집에서 멀지 않는 전자공장에서
그제는 강 건너 허름한 재개발 지역에서
그리고 물고기가 모여 사는 냇물에서
식어버린 몸들이 매일매일 찾아온다
황규관, 태풍을 기다리는 시간, 실천문학사. 2011년. 96-97쪽
개인적인 죽음이든, 사회적인 죽음이든 죽음은 우리에게 슬픔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언제까지 슬픔에만 빠져 있을 수는 없다. 이 슬픔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 아니겠는가.
다시는 이런 죽음이 없게. 비록 죽음은 늘 삶에 따라오는 그림자 같은 존재지만, 그 죽음을 잘 맞이할 수 있게 우리의 삶을 잘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잘 살자, 그것이 잘 죽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