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네 창비시선 302
문동만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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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도종환의 시구절도 있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흔들린다.  특히 요즘처럼 생존조차도 불분명한 시대에는 이흔들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만다.

 

흔들림.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그런 흔들림. 이 흔들림 속에서도 우리는 중심을 잡아야 한다. 중심을 잡지 못하면 떨어지고 만다. 내 인생을 흔드는 저 많은 것들 속에서 나는 그네에 탄 사람처럼 중심을 잡고 , 그 흔들림에 따라 흔들리되 결코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문동만의 시집 "그네"를 집어들고 제일 먼저 읽은 시가 '그네'다. 시집 제목도 '그네'니 제목이 된 시부터 읽어야 한다는 어떤 강박, 또는 어떤 마음이 작동을 한 것이다.

 

아직 누군가의 몸이 떠나지 않은 그네,

그 반동 그대로 앉는다

그 사람처럼 흔들린다

흔들리는 것의 중심은 흔들림

흔들림이야말로 결연한 사유의 진동

누군가 먼저 흔들렸으므로

만졌던 쇠줄조차 따뜻하다

별빛도 흔들리며 곧은 것이다 여기 오는 동안

무한대의 굴절과 저항을 견디며

그렇게 흔들렸던 세월

흔들리며 발열하는 사랑

아직 누군가의 몸이 떠나지 않은 그네

누군가의 몸이 다시 앓을 그네

 

문동만, 그네, 창비. 2009년 초판. 104쪽 '그네' 전문

 

흔들리는 그네에서도 우리는 흔들림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아니, 그 흔들림 속에서 우리는 중심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함께 할 수 있다. 앞선 사람의 흔들림이 뒷사람의 흔들림과 함께 어울려 그 흔들림이 삶을 위기에 처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중심으로 돌연히 나서게 하는 흔들림이 된다.

 

그래서 흔들림은 우리의 몸을 앓게 한다. 고통으로 앓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세계를 향한 몸짓으로써의 앓음.

 

이 앓음이 없으면 우리의 인생은 곧음이 없이 그냥 굴절로만, 흔들림으로만 점철되고 말 것이다. 하여 그네는 흔들림이 꼭 우리의 삶을 어렵게만 하는 것이 아님을, 흔들림 속에서 우리는 함께 함을, 곧음을 찾을 수 있음을, 중심을 잡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가난한 집안의 자식으로 태어나 겪은 그 지독한 가난이, 그 고통이 아버지의 이야기, 어머니의 이야기, 형의 이야기로 형상화되어 적나라하게 시에 드러나 있어서 아직도 하층민의 삶은 퍽퍽함을 잘 보여주고 있는 시집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가난에만 함몰되어 있지는 않는다. 어떤 희망이,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희망이 시집에는 나타나 있다.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 어려움 속에서도 꿋꿋하게 나아가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그런 시들로 인해, 어려운 시대, 힘을 얻게 되기도 한다.

 

'청어'란 시를 보면 약한 사람들이 어떻게 강자들에게 대항해야 하는지, 아니 약한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

 

청어는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면

그놈의 오장육부에 잔가시를 박으며

기꺼이 죽어준다고 한다

아무리 힘센 놈이라도 그 잔가시의

껄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다음부터는 청어를 잡아먹지 않는다 한다

그리하여 나머지 청어들은

안녕하고 가끔 몇몇의 청어는 자진하여

검은 아가리 속으로 제물처럼

바쳐주곤 한다는 것인데 그런 뭣 같은

얘기가 그런 같기도 하고

엉터리 같기도 하던 꽃비 내리는 봄날인데

오늘 청어 같은 한 사람이

스스로 기름 붓고 구워지셨다

터진 살 사이로 잔가시만 앙상한

물고기 한 마리 하늘길 따라 오르던 날

허방에도 어떤 여린 내장이 있는지

자디잔 핏방울이 떨어졌다

 

문동만, 그네, 창비. 2009년 초판. 85쪽 '청어' 전문

 

이러지 않아야 가장 좋겠지만, 약한 사람이 늘 당하는 일에서 벗어나려면 약한 사람에게도 힘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하는 일. 그런 일.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렇게 강한 자에게서 벗어나는 일이 없어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아직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

 

한 사람이 하나의 청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모든 청어가 되어 누구든 건드리면 이렇게 된다는 사실을 미리 알게 하는 일... 단결만이 살 길이다라는 말. 약한 사람들, 청어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리라.

 

이러저러한 시들이 마음에 와닿고, 아직도 시의적절한 시들인데... 이 시, '미안하다 봄'만큼 올해 봄에 어울리는 시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정말로, 미안하다, 봄. 미안하다, 청춘이라는 말이 나오게끔 하는 이 봄에...

 

너는 생활의 하수를 미나리꽝으로 받으며

 

푸른 잎들 밀어올리는데

 

회류하지 못하는 황사를 어느새 품어서

 

아침이면 가라앉혀놓고

 

먼 산을 당겨서 가까이 안는데

 

내 마음 마르고 습한 노래들 그치지 않는다

 

미안하다 봄

 

문동만, 그네, 창비, 2009년 초판. 100쪽. '미안하다 봄' 전문

 

하지만 곧 중심을 잡을 것이다. 언제까지 봄에게 미안하다고 하고만 말겠는가. 이 마르고 습한 노래들이 삶을 적시는 단비가 되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흔들리며, 흔들리며, 함께 흔들리며, 흔들림 속에서 중심을 잡으며, 우리는 청어와 같이 잔가시들을 절대로 버리지 않으며... 더 이상 봄에게 미안해 하지 않을 때까지..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이게...이 시집에서 하고자 하는 말이지 않을까... 시를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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