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곽복록 옮김 / 지식공작소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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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는 전기 작가로 유명하다. 그런데도 아직 그의 이름을 듣는 것에 비해서는 책을 읽어보지 않았다. 그가 자살했다는 사실도 잘 알지 못했고.. 그가 유대인이라는 사실도 잘 알지 못했다. 그가 한1960년대까지는 살아있지 않았을까라는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 책은 츠바이크의 자서전이라고 해도 좋다. 그가 자신이 살아온 세계를 바라보며 시간 순서대로 내용을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겪은 일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그가 만난 사람들 이야기도 많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유럽의 지성사를 알게 되기도 한다.

 

츠바이크가 시인이자 소설가이자 극작가이자 전기작가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는 어린 시절부터 시인으로 이름이 났고, 그의 작품들은 대단한 인기를 끌어서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이 되어 그의 작품이 읽혔으며, 또 그는 수집가로서도 능력을 발휘하여 작가의 친필 원고들을 많이 모았다고도 한다.

 

그러니 그의 생애를 좇는 이 책은 츠바이크 개인사이기도 하고, 당대 유럽의 지성사가 되기도 한다.

 

제목이 "어제의 세계"다. 어제의 세계란 이미 지나간 세계를 뜻한다. 자신이 지금 발딛고 있는 세계가 아니라 지금 있는 자리까지 거쳐온 세계를 말한다. 그래서 그런 세계는 바로 자신을 만들어낸 세계이기도 하다.

 

2차세계대전이 시작되고 영국에서 츠바이크 자신이 생각한 것으로 이 책을 끝맺고 있는데.. 그에게 어제의 세계는 긍정의 세계이기도 하고 부정의 세계이기도 하다.

 

마치 자신의 그림자를 보는 듯한... 그러나 그림자는 빛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모든 그림자는 궁극적으로 빛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벽과 황혼, 전쟁과 평화, 상승과 몰락을 경험한 자만이, 그러한 인간만이 진정으로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552쪽)

 

그는 자신을 고향이 없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그는 자신의 고국을 등지고 마는데... 단지 육체적으로 고국을 등졌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어느 한 나라에 국한된 사고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

 

코스모폴리탄. 세계주의자. 그는 유럽을 자신의 고향으로 삼고 살았는데... 그것이 바로 그가 살았던 어제의 세계였는데.. 이런 어제의 세계에 두 차례에 걸친 전쟁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웠고, 이 그림자는 너무나도 어둡고 커서 결국 빛을 몰아내 그를 어제의 세계에서 격리해 버리고 말았다고 할 수 있다.

 

범 유럽주의자임을 자처했는데.. 세계는 국가로 나뉘어 전쟁을 치르고 있는 현실. 그 현실 속에서 헤맬 수밖에 없는 지성인. 그가 바로 츠바이크다.

 

오스트리아라는 지정학적인 약소국에서 태어났다는 것.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알려진 작가라는 것.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것.

 

이것이 결국 2차세계대전 때 미국이 일본과 전쟁을 하게 되자 자신의 목숨을 끊게 되는 결과를 낳게 하는데...

 

전쟁을 피해 남미의 브라질로 이주해 나름대로 삶을 유지해가던 그에게 또다른 전쟁은 그를 견디지 못하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전쟁으로 점철된 어제의 세계는 이제는 사라져야 할 세계인데... 그가 원하는 어제의 세계는 국경으로 사람들을 가르지 않는, 세계의 지성인들이 자유롭게 교류하는 그런 세계였는데... 함께 공존하는 그런 사회. 그 사회를 여지없이 깨뜨려버린 히틀러라는 사람. 그에 대한 증오가 이 책에서는 가감없이 나오고 있다.

 

이 책이 지금 우리 사회에 의미가 있는 것은... 우리도 츠바이크처럼 어제의 세계를 겪었기 때문이 아닐까? 공동체로 서로 평화롭게 지내던 어제의 세계도 우리는 겪었고, 츠바이크가 겪었던 두 번의 전쟁과 같은 비극을 우리 역시 겪었으며, 히틀러만큼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독재자들을 겪었으니...

 

그 어제의 세계가 그냥 어제로만 머물었으면 츠바이크의 이 책은 서양의 과거를 겪었던 한 지식인의 초상에 불과했을텐데... 우리도 츠바이크와 비슷하게 어제의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지는 않았는지.

 

다만, 그는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어제의 세계로부터 도피하고 말았지만...우리는 이 세계를 오늘도 겪고 있지는 않은지.

 

그렇다면 이미 우리에게는 먼저 간 길이 있으니.. 그 길을 우리에게 맞게 다시 만들어 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 이것이 이 책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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