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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참 재미있다.
오랜만에 정말로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읽은 책이다.
소설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이 소설보다도 더 긴박하고 박진감이 넘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소설을 굳이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소설을 단지 그런 이유로만 읽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이다.
읽을수록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과 읽을수록 마음이 불편해지는 책이 있다고 한다면, 요즘 소설은 읽을수록 마음이 불편해졌었다. 소설을 읽지 않으려 했던 이유 가운데 이것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소설은 읽어갈수록 마음이 따뜻해졌으니...
소설이 아직도 현실에 유용하고, 역시 소설은 읽어야지만 판단할 수가 있고, 또 그런 점에서 소설이 아직도 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지도 않고 미리 편견을 가지고 요즘 소설은 다 이래 하고 재단하지는 않았는지 반성을 하게 만든 소설이고, 세상이 험악할수록 그런 험악한 세상을 핍진하게 그려내는 소설도 필요하지만 험악한 세상에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음을 보여주는 소설도 필요함을 새삼 느끼게 만든 소설이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에서 말하듯이 우리의 마음도 물과 같을진대, 도대체 요즘은 들리는 소리나 보이는 장면이 모두 마음의 파장을 깨뜨리는 것들이니, 소설이 문제적 세상에 문제적 인물이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근대적 소설의 정의 말고도, 소설은 어지러운 세상을 아름답게 살려는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새로운 정의가 필요한 시대이기도 하다.
소설을 통해서까지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면서 마음이 깨져서야 되겠는가.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소설을 통해서라도 마음이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바로 지금 이 시대에 딱 알맞는 소설이다. 판타지와 현실이 적절하게 결합되었고, 각 단편을 읽는 느낌을 주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죽 읽어가면 '나미야 잡화점'을 중심으로 모두가 연결이 된다. 그리고 이 '나미야 잡화점'은 보호시설인 '환광원'과 연결이 되고. 일종의 연작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그냥 장편소설이라고 해도 좋다.
각 단편의 제목마다 다 다른 인물이 등장하지만 이 인물들은 모두 '나미야 잡화점'과 관계를 맺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이런 고민들이 어떻게 해결되는지를 각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고민이 해결되는데에 따라 눈물샘이 자극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이 자극하는 눈물샘이 비통한 마음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따스한 마음 때문에 눈물이 흐른다. 눈물과 함께 마음이 따뜻해진다. 마음이 정화된다. 비극적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기쁨의 카타르시스다.
물론 소설에서는 극단적인 문제 해결방법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인 선택이 소설에서나 이루어지는 비현실적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우리가 주변에서 많이 보아왔던 일들이기 때문이다. 즉 아버지의 사업이 파산지경에 이르자 야반도주를 하다 자식이 사라진 걸 보고 자살한 부모이야기라든지, 사랑하는 사람과 운동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이라든지, 자신의 재능에 대해서 하는 고민, 정말로 돈이 절실하게 필요한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등등 참으로 현실적인 문제들이 제시되어 있다.
이 고민들에 대해 나미야 잡화점의 주인은 친절하게 성심을 다해 상담을 해준다.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서 고심을 하기도 하고. 또한 이런 상담을 받은 사람들 역시 자신의 고민에 대해 진지하고도 철저하게 생각을 하고 결국 자신에 맞는 방법을 찾아 실천하게 된다.
결론은 행복한 결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렇게 행복한 결말이 나게 되는 과정에서는 수많은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 이 어려움, 그것을 비껴 달아나려 하지 않고 그것에 맞설 때 비로소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음을 이 소설은 보여주고 있는데...
이렇게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성심껏 대답해주는 사람, 비록 그 답이 자신이 원하는 답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들어주고 이야기해주었다는 데에서 많은 사람들은 이미 문제의 반을 해결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문제를 바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드는 힘은 바로 조용히 자신을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음을 알고 있음에서 나온다. 그 역할을 '나미야 백화점' 주인이 해냈다.
이렇게만 되면 이 소설은 판에 박힌 소설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너를 지지해주는 상담자가 있어, 너는 문제를 회피해서는 안돼. 그 문제를 똑바로 보고 해결하려고 노력해 봐. 그러면 문제가 해결돼 있는 걸 보게 될 거야. 는 식의 도덕적 설교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설은 이런 도덕적 설교와 다르다. 지당한 말씀은 어떨 때는 잔소리에 불과해진다. 잔소리가 아닌 사람이 마음으로부터 깨달음을 갖게 만드는 힘, 그것은 바로 소설의 구성이다.
이 소설에서는 그 장치로 판타지의 요소를 적용했다. 다른 집의 물건을 훔치고 달아나는 젊은이 셋. 이들에 대해서는 어떤지 나오지 않는다. 다만 한 친구는 리더고, 다른 한 친구는 좀 모자라는 친구. 그리고 가운데 한 명. 이렇게 모두 좀도둑에 불과한 세 명의 젊은이가 피난처로 '나미야 잡화점'에 들어오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이 셋이 이상한 편지를 받고... 여기에 대해 자신들이 상담을 해주는 과정에서 이들 역시 자신들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찾게 된다. 문제자가 해결자가 되는 순간. 그래서 이 작품은 처음에 왜 이들이 이토록 도망치고 있는지, 이들이 왜 도둑질을 했는지를 마지막에 가서야 알게 된다. 이 마지막에 모든 것이 하나로 꿰어지고... 재미와 감동은 더욱 늘어난다.
이것이 바로 도덕적 설교와는 다른 소설 구성의 힘이다. 소설을 읽는, 또는 소설을 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여 이 작품은 읽는 자체로 치유가 되는 독서치료의 좋은 자료가 된다. 재미도 추구하면서 무언가를 깨달아 자신의 삶의 한 방편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읽기은 후 벅찬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다. 잠시 밖에 나가 산책을 하며 자연을 보고 오는 것도 좋다. 마음이 더욱 충만해지게. 이런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그것은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도 사회 곳곳에서 이런 일들을 만나고 있지 않은가.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지는 그런 마음들. 이 소설을 통해서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