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너무도 무거워서, 너무도 어두워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정말로 화병에 걸려 쓰러질 것만 같아서... 전국민이 모두 울화병에 걸릴 정도로 무능한 모습을 보면서... 화사해야 할 봄날을 지옥으로만 만들고 있는 것 같아서...

시집을 찾아보았다. 시라도 읽어야 할 것 같아서. 그래야 미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 고른 시집이 안찬수의 "아름다운 지옥"
아름답다는 말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지옥에서도 희망을 보고 싶으니, 그래서 지옥에 가서 뭇중생들을 다 구하고 싶다는 지장보살도 있었으니... 제발 이 지옥에서도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나왔으면 좋겠어서. 자신의 죄를 알고 인정하면 지옥 속에서도 최소한 아름다움은 만들어질테니. 조금은 지옥이 훈훈해질테니.
아름다운 지옥
나는 지옥으로 가련다
철로 둘러싼 산이 동쪽에 있는데
그 산은 깊고도 어두워
해와 달의 빛이 없다 한다
거기에 큰 지옥이 있으니
한 칸도 아니고 두 칸도 아니고
끝이 없는 지옥이다
지옥은 또 있으니
사각의 외로운 방이 자꾸만 작아지는 지옥
마음을 찌르는 반성의 화살이 쏟아지는 지옥
밑에서는 불을 때고 위에서는 용광로를 쏟아붓는 철판 위에서
하루도 잠들 날 없이 그리워해야 하는 지옥
지옥은 또 있으니
불을 뿜어대는 분화구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지옥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쟁론해야 하는 지옥
피를 닦아내면서 다시 피를 흘려야 하는 지옥
아침부터 외쳐서 다음날 아침이 되어도 계속 외쳐야 하는 지옥
지옥은 또 있으니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져 너풀거리는 마음의 누더기가 채찍질하는 지옥
자기가 누어놓은 똥을 먹어야 하는 지옥
썩어들어가는 손을 잘라내면 다시 자라나는 손을 잘라내야만 하는 지옥
지옥은 또 있으니
혀를 뽑아내는 지옥
혀에 바늘을 꽂고 말을 해야 하는 지옥
혀로 땅을 갈아엎어야만 하는 지옥
혀로 갈아엎은 땅에 묻혀야만 하는 지옥
이런 지옥이 끝없이 연결되어 있으니
지옥문을 다 통과해도 다시 처음 문으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장이여, 지장이여
나는 이미 내 죄근을 알고 있으니
나는 지옥으로 가련다
안찬수, 아름다운 지옥, 문학동네. 1996년. 49-51쪽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엘리어트가 말했다고 했지.
사월은, 꽃 피는 사월은 우리에게는 진달래와 같은 피가 생각나는 달이었지.
4·19로 대변되는 사월은 우리에게 피를 연상시켰던, 희생을 연상시켰던 달이었는데, 그럼에도 사월은 잔인한 달이 아니라, 우리에게 희망을 준 달, 새롭게 민주주의에 대해서 알게 해준 달이었는데...
이제 사월은 정말로 잔인한 달이 되었구나!
생떼같은 목숨들이 바닷속에서 아직도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5일을 보내고 있는 이 현실이 바로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배 안에 있는데, 있는 줄을 알면서도 배 안으로 쉽게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만 뱅뱅 돌던 5일. 그 모습을 온 국민이 지켜보아야 했던 5일은 그야말로 지옥에 다름 아니었다.
누구의 잘못이 더 큰 잘못이 되어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우리 어른들이 저지른 잘못에 한창 봄을 누려야 할 아이들이 차가운 바다 속에서 생사도 모르는 채 그렇게 있어야 한다는 이 현실.
마치 자신은 아무 책임이 없는 양, 자신만은 도덕적인 양, 자신의 말 한 마디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양, 저 높은 곳에서 우월한 도덕심을 지니고 있은 채 그냥 이런 아비규환을 내려다 보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높은 자리일수록 책임은 무거워야 하는데, 왜 우리나라는 높은 자리일수록 책임이 가벼워질까? 마치 자신은 책임이 없는데, 밑에서 다 잘못하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할까?
이래저래 위에서부터 아래에서까지 총체적인 무능을 드러내고 있는 이 현실은 차라리 지옥이다. 지옥이라고, 이건 지옥이라고 생각을 하면 조금 인정이 되려나.
이 지옥에서, 어른들이 만들어낸 이 지옥에서 아이들만은, 제발 아이들만은 탈출하게 해달라고 기원을 하는데...
정말로 지옥에 가야 할 사람은 아이들이 아니라, 이제서야 봄에 도달한 그 아이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겨울을 살고 있는 우리 어른들인데... 더 높은 자리에 있는 그런 사람들인데...
잔인한 사월... 정말로 잔인한 사월로 기억될 올 사월.
조금이라도 기적이 있다면... 정말로 기적이 있다면... 우리 아이들이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다시 이 아이들이 봄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지옥은 아이들의 몫이 아니다. 지옥이 있다면 그건 어른들의 몫이다. 아이들은 절대로 지옥을 경험해서는 안된다.
정말로 기적이 일어나기를...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