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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읽기와 소설교육 ㅣ 푸른사상 현대문학연구총서 28
정래필 지음 / 푸른사상 / 2013년 9월
평점 :
소설을 읽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현실이 소설보다도 더 긴박하고 박진감이 넘치는데, 누가 소설을 읽을까? 소설 속에 나오는 현실이나 인물들보다 현실 속의 사건들과 인물들이 더 흥미롭다면 소설은 제 역할을 하기도 전에 고사되어 버리고 만다.
이런 이유말고도 소설이 읽히지 않는 이유가 있다. 소설을 읽을 여유가 없다. 어른들은 먹고 살기 바쁘고, 아이들은 공부하기 바쁘니, 서로 바쁜 세상에서 책을 마주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조금의 여유가 있다면 자신의 지친 몸과 뇌를 쉬게 하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또 하나, 엄청나게 발달한 스마트 기기들이 소설을 읽지 않게 한다. 스마트 기기들로 소설보다도 더 흥미로운 것들을 언제든지 만날 수 있고, 또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래서 인문학의 위기도 위기지만, 소설 또한 고사 직전에 있다. 그럼에도 엄청나게 많은 소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현실이니, 소설은 늘 우리 곁에 있는데 우리가 소설에 눈길을 주지 않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 교육에서 소설을 배운다. 그들은 소설을 배우는데, 단지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 배운다.
소설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간접경험하고 자신의 삶과 비교하여 더 나은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실천해 간다는 자아실현으로서의 문학교육은 말로만 존재한다. 학생들에게는 이런 거창한 내용보다는 시험에 어떤 문제가 나올지가 더 중요하다.
그러니 학교를 졸업하면 시험에만 필요했던 소설 따위는 집어치워버리고 만다. 이게 소설의 운명이다.
소설의 운명? 이렇게 버려지는 것이? 그런데도 왜 소설이 꾸준히 나오고 있지? 작가 지망생도 많고, 그 많은 출판사들도 아직 소설 분야를 포기하지 않았는데,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소설은 이제 운명이 다했다고 생각해도 아직 소설의 운명은 끝나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는 여전히 소설이 주요한 교육내용으로 등장하고 있으니, 학생들은 앞으로도 계속 소설을 읽어야 할테고, 소설에서 무언가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런 사람들에게도 소설은 계속 필요하리라.
그러면 소설이 고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학교에서 소설을 교육하는 방법이 바뀌어야 한다. 학생들에게 의미를 전해주는 소설 교육이 되어야 한다. 도대체 내 인생에서 소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아야 읽을 것 아니겠는가?
삶과 동떨어진 가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문학이 소설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삶이고, 내 삶임을 알게 해주는 문학이 소설임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에 대한 고민에 어느 정도 해답을 주는 책이 이 책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기억 읽기를 시도하라는 이 책. 기억 읽기가 왜 중요한지를 논증하고 있는 이 책은 기억을 통하여 자신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은 작가가 쓰면서 자신의 기억을 불러내어 형상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독자는 작가가 형상화한 작품을 읽으면서 자신의 기억을 불러내어 재형상화해야 한다고, 그렇게 재형상화했을 때 그 소설은 자신에게 의미있게 다가온다고... 그런 재형상화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다.
학술적인 책이라서 전공을 하는 사람들이나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읽을 수밖에 없는 책이지만, 적어도 우리가 소설을 가운데 두고 작가와 작중인물과 대화를 할 수 있음을, 대화를 해야함을 인식하게 해주고 있기에 의미가 있는 책이다.
작가의 기억을 작품으로 형상화한 작품을 읽으면서 거기에서 촉발할 수 있는 자신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또는 숨어있던 기억이 자연스레 표출되어 기억을 언어로 다시 표현해낸다면, 이전의 자신과는 다른 자신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것이 소설을 읽는 이유이기도 할테니 말이다. 그래서 소설이 이런 의미가 있기에 시간이 없다고 핑계를 대지 말고 읽어야 한다.
소설을 읽으며 그동안 숨겨왔던, 또는 잃었던 자신을 만나야 한다. 그렇게 만나는 자신은 과거의 자신이 아니고, 현재의 자신도 아니다. 현재의 내가 불러낸 과거의 나이기에 그렇게 기억된 나는 미래의 나를 만들어가는 디딤돌이 된다.
스마트 기기에 얼굴을 박고 수시로 변하는 그 기기 속에서 자신의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조금 느리더라도, 조금 고통스럽더라도 소설을 읽으며 자신 속의 다른 자신들을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우리 인간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기에, 그 복합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다른 나'들'이 산재해 있는 소설을 읽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소설을 더욱 잘 읽기 위해서는 내 기억도 읽어내야 한다. 내 기억과 소설에 나오는 기억이 만나는 순간, 다른 모습의 나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