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계절이다.

 

정치의 계절이란 말보다는 사실 선거의 계절이라는 말이 더 맞는 듯하다.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이미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되었으니, 선거의 계절이 시작되었음에는 틀림없다.

 

지방자치 선거에 교육감 선거까지... 우리의 실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선거가 6월에 치러진다. 이 선거를 통해서 4년이 결정이 되는데...

 

정치의 계절이라는 말이 어폐가 있는 것이 정치는 우리의 삶 내내 붙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정치에서 절대로 자유로와 질 수 없기 때문에 정치는 따로 계절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정치를 우리가 실감하게 되는 때가 바로 선거가 치러지는 때이니 만큼, 지금을 강조하기 위해서 정치의 계절이라는 말을 써도 무방하리라는 생각은 든다.

 

그래도 언어가 삶을 좌우할 수 있으니, 정치의 계절이라는 말보다는 선거의 계절이라는 말을 쓰는 편이 좋을 듯하고, 직접민주주의 대신 간접민주주의를 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선거는 유일하게 시민들이 정치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런 기회를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리다는 이유로... 나이나 성별, 신체장애의 유무 등에 의해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고 헌법에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년의 나이를 한 살 낮추는 것에 대해서는 심한 반발이 있는데...

 

아직도 한창 배우고 있는 고등학생에게 무슨 선거권이냐부터, 학생이 제대로 된 판단을 하겠느냐는 말까지...

 

그래서 18세로 투표권을 낮추자는 말은 어림없는 소리로 치부되고, 아직도 실행이 되고 있지 않다. 대학입시에 매진해도 시원찮을 고3이 무슨 투표냐고? 그런 시간이 있으면 공부나 하라고?

 

그런데... 그런데... 왜 공부를 하지? 대부분의 학교 교육목표가 민주시민 양성 아니던가. 민주시민은 어떤 사람들이지? 자신들에게 관계된 일에 자신들의 의견을 낼 수 있는 사람,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 않은가.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은 노예에 불과하지 않는가. 아니면 판단불능의 사유가 있는 어떤 특정한 집단이거나.

 

교육감 선거를 예로 들어보면 문제가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교육감은 4년동안 그 교육청의 교육행정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교육부 장관보다도 교육감에 의해서 일선 교육현장은 극심한 변화를 겪는다.

 

그 단적인 예가 서울시교육감 아니던가. 전임 교육감은 혁신학교에 중점을 두고 교육정책을 펼쳤다면, 후임 교육감은 혁신학교를 지우려는 교육정책을 펼치고 있으니, 교육감에 따라 학교 현장은 이리저리 휘둘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학교 현장의 중심축 중의 하나가 바로 학생들이다. 학생으로만 국한시키지 않으면 바로 그 나이 또래의 청소년들이다. 청소년들의 대다수를 학생들이 차지하고 있지만, 제도권 밖에 있어도 교육정책의 영향은 제도권 안이나 제도권 밖이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자신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교육감 선거에 학생들은 참여할 수가 없다. 교육감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학교교육의 범위는 청소년이라고 할 수 있는 유,초,중,고등학교 교육에 해당이 된다.

 

하지만 그들은 어리다는 이유로, 판단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도대체 이게 말이나 되는지, 청소년들이 판단능력이 떨어진다고? 과연 그런가? 그럼 판단능력이 떨어지는 어른들은? 왜 그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을 문제삼지 않는가. 투표권을 주느냐 마느냐는 판단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로 투표를 할 수 없는 상태에 처해 있다.

 

문제는 단지 투표만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정치교육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민주시민교육"이 목표인 사회과가 교과목으로 버젓이 자리잡고 있지만, 그것은 말 뿐이다. 그리고 시험용일 뿐이다. 오로지 시험을 위한 교과로 존재하는 사회과. 이런 상태에서 청소년들의 정치의식은 발달할 수가 없다.

 

제대로 된 정치교육 한 번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 어른이 되었다고 정치의식이 성숙한 시민이 되는가? 그런 경우가 있는가?

 

정치의 후진성, 그것은 정치교육의 부재를 이르는 말이다. 젊은이들에게 왜 너희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느냐고 질책을 많이들 한다. 그것도 다른 때에는 잠잠하다가 선거때가 되면 각 당의 당리당략에 따라 이런 말이 나온다.

 

왜 정치에 관심이 없냐고? 당연하지 않은가. 언제 제대로 정치에 대해서 민주시민의 역할에 대해서 가르친 적이 있는가?

 

학생들이 "안녕하십니까"란 대자보를 붙이자 그것은 학생이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교육당국이 앞장서서 떼어버리는 현실에서, 무슨. 

 

그래서 이번 "민들레 91호"에서는 특집으로 '정치가 꽃피는 교육'을 들었다. 시의적절하게 잘 다룬 기획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정으로 민주시민을 양성하고 싶다면 학생들(청소년들) 너희들은 어리니까, 공부해야 할 나이니까 정치에 관심두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너희들은 학생들(청소년들)이니까 제대로 정치에 관심을 두고 공부하라고 해야 한다.

 

정치에 직접 참여하게도 해야 한다. 물론 집행권을 주지 않더라도, 그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결정을 하게도 해봐야 한다. 그리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옛날에는(지금보다도 더 후진적이라는) 15세가 넘으면 이미 어른 대접을 받았다. 춘향이의 나이를 생각해 보라. 그리도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펼치던 춘향이의 나이는 그 때 16세였다. 또한 옛날에 소년 진사들... 뭐... 이런 과거에 나이 제한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라.

 

민들레 이번 호를 중심으로 학생(청소년)의 정치교육에 대해서, 정치 참여에 대해서 논의를 해야 한다. 마냥 어리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또 하나의 주체로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민주시민이 양성될 수 있다.

 

학생(청소년)들에게 제대로 된 정치 교육을 할 때에만, 선거 때만 반짝하는 정치계절이 아니라, 늘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정치라는 사실을 우리가 체험할 수 있다. 그 사실을 민들레 이번 호가 상기시켜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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