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관집 이층 창비시선 370
신경림 지음 / 창비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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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신경림 시인에게도 노시인이라는 호칭을 붙이게 되었다. 이름만으로도 믿음을 주는 몇 안되는 시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의 시집이 나오면 기쁜 마음으로 읽고는 했는데...어느덧 세월이 이리도 흘러 시인도 80이라는 나이가 되었다.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시인도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기도 했겠지. 이번 시집은 과거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이제는 서서히 과거를 돌아보며 자신이 살아온 삶을 반추할 때가 되었다는 것인가. 시집의 뒤에 시인의 말에서 시인은 지금도 꿈을 꾸고 있다고 했는데... 그 꿈이 과거의 일을 되살리기도 한다고, 그리고 그 꿈이 바로 자신의 시이기도 하다고...

 

그렇다. 시인의 삶 전체가 바로 시가 된다. 우리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로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글로 쓰면 대하소설이 된다고 하는데... 시인은 자신의 삶을 시로 표현하고 있다.

 

삶이 시가 되는 순간. 그것은 억지로 꾸미려고 해서는 이룰 수 없는 경지다. 정말로 대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젊었을 때 쓰는 글보다는 나이가 들어서 쓴 글이 훨씬 이해하기 쉽듯이 시인의 시는 젊은 시절에도 그다지 난해하지 않았지만, 이번 시집에 실린 시들은 더 이해하기 쉽다. 그냥 술술 읽힌다. 그리고 마음에, 머리에 콕 들어와 박힌다.

 

시집 뒷표지에 있는 박성우 시인의 글에서 '흑백으로 인화해서 보여준다'는 말이 나오는데, 시인이 이 시집을 정확히 파악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인은 시인을 알아보나? 아니 시인이 시를 제대로 읽었다고 해야겠지.

 

이 시집의 전체적인 느낌은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흑백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사진관집 이층이라는 제목에서 시들을 사진을 보듯이 인화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요즘 사진관이 점점 사라지는 현실에서는 시인이 말하는 사진관은 예전의 사진관일테고.. 그렇다면 사진은 화려한 칼라사진이 아닌 흑백사진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분위기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시가 나는 '남포 갈매기'라고 생각한다. 북에 두고온 가족을 그리워하는 사진사가 시인의 가족을 북한의 복장을 입혀 남포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어느날 사진사는 사라지고, 그와 비슷한 사진을 고향의 술집에서 발견한다는 이야기를 시로 표현한 시.

 

빛바랜 한 장의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는 시이기도 하고, 이런 흑백사진의 아련한 느낌을 주는듯한 시는 도처에서 나오는데... 우크라이나를 여행하고 나서 쓴 우크라이나 관련시들도 이런 느낌을 준다.

 

여기에 무엇보다도 이 시집의 첫 시...'정릉동 동방주택에서 길음시장까지'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담고 있다.

 

이 시를 읽으면서 이청준의 소설"눈길"이 겹쳐졌는데... 눈길 속에서 아들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고 있던 어머니의 그런 장면이, 이 시에서 어머니가 평생동안 걸어다닌 길에서 그리고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가는 길에서 어떤 슬픔 같은 것, 이제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그런 것들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어렵지 않고 담담하게 적어내려간 시들인데... 나도 나이가 먹는가, 그 시들이 가슴에 콕콕 박히고 있다.

 

늙는다는 것, 많은 것을 버린다는 것이고, 많은 것을 버린다는 것은 그만큼 가벼워진다는 얘기인데... 가벼워진다는 것, 그것은 치장하지 않는 것이다. 담백한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

 

이런 시인의 눈을 우리 모두가 가져야하겠지. 나이들어서 더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말로 그들은 이런 시를 읽으며 늙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나이 들어 눈 어두우니 별이 보인다

반짝반짝 서울 하늘에 별이 보인다

 

하늘이 별이 보이니

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고

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니

사람들 사아에 별이 보인다

 

반짝반짝 탁한 하늘에 별이 보인다

눈 밝아 보이지 않던 별이 보인다

 

신경림, 사진관집 이층. 창비. 2014. 초판 3쇄. 47쪽

 

이런 눈을 지닌 사람은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 단지 나이 먹기에 이런 눈을 지니는 것이 아닌, 이런 삶을 살아왔기에 이런 눈을 지니게 되었을 것이다.

 

참 좋다. 마음이 따스해진다. 이게 바로 시를 읽는 재미 아니겠는가.

 

     쓰러진 것들을 위하여

 

아무래도 나는 늘 음지에 서 있었던 것 같다

개선하는 씨름꾼을 따라가며 환호하는 대신

패배한 장사 편에 서서 주먹을 부르쥐었고

몇십만이 모이는 유세장을 마다하고

코흘리개만 모아놓은 초라한 후보 앞에서 갈채했다

그래서 나는 늘 슬프고 안타깝고 아쉬웠지만

나를 불행하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나는 그러면서 행복했고

사람 사는 게 다 그러려니 여겼다

 

쓰러진 것들의 조각난 꿈을 이어주는

큰 손이 있다고 결코 믿지 않으면서도

 

신경림, 사진관집 이층. 창비. 2014. 초판 3쇄.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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