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집은 해설자의 말에도 나와 있듯이 주로 수평을 다루고 있다. 그는 수평에 대해서 참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수평 중에서도 내 마음에 와 닿은 것은 바로 늙음이다.

 

늙음이야 말로 우리네 삶에서 가장 수평이 되는 순간이 아니던가. 인간은 수평에서 시작하여 수직을 꿈꾸다가 다시 수평으로 돌아오는 그러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우리네 삶에서 두 순간(요즘은 그렇지도 않은가보다마는), 즉 수평이 되는 어린 시절과 늙음의 순간은 모두가 평등하게 겪지 않는가. 그렇게 늙음은 우리를 평등으로 이끌게 되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왔는가는 결국 어떻게 늙었느냐로 귀결되지 않겠는가.  무슨 변증법도 아니지만, 처음의 수평과 나중의 수평은 다른 무게를 지니고 있을테고...

 

나중의 수평, 그 늙음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전달해 줄텐데...

 

그런데 요즘은 잘 늙는다는 것도 힘들겠다는 생각을 한다. 늙음이란 삶의 신산함을 거쳐 이제는 달관의 경지에 이르러 젊음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오히려 늙음을 무슨 특권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또 늙음을 그냥 내놓아버림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잘 늙음은 바로 '선배'가 된다는 말이고, '원로'가 된다는 말인데... 그런 선배, 원로가 그리운 요즘이다. 이런 시대를 견뎌나갈 지혜를 주는 그런 늙음 말이다. 

 

세상의 신산함을 온몸으로 겪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이 '가재미'란 시란 생각이 든다. 낮은 곳으로 낮은 곳에서 무게에 눌려 더 납작해진 몸으로, 아래위가 아니라 좌우로 자신의 삶을, 수평으로 자신의 삶을, 다른 말로 하면 무거운 짐에 눌려 낮은 곳에서만 살 수밖에 없었던 그런 삶.

 

그러나 그러한 삶 속에서도 세상 모든 삶이 녹아 있었으며, 우리는 그런 낮은 삶에 함께 할 때 그 삶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음을 이 시는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두 시를 인용한다. 늙음에 대하여, 그러나 그 늙음의 다름에 대하여. 낮은 곳에서 수평으로 살다가 늙음에 다다랐지만, 그러나 그 늙음은 그냥 연민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삶이 우리를 위로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 삶 속에는 세상이 들어 있다.

 

그 세상이 들어 있는 늙음은 우리에게 '선배'가 되고 '원로'가 된다. 그래서 이 두 시는 마음에 와 닿는다. 콕 박힌다. 나는 어떻게 늙을까? 내 늙음으로 남을 위로해주는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가재미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내잡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느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문태준, 가재미, 문학과지성사. 2006년 2쇄. 40-41쪽

 

 

 

 

노모(老母)

 

반쯤 감긴 눈가로 콧잔등으로 골짜기가 몰려드는 이 있지만

나를 이 세상으로 처음 데려온 근느 입가 사방에 골짜기가 몰려들었다

오물오물 밥을 씹을 때 그 입가는 골짜기는 참 아름답다

그는 골짜기에 사는 산새 소리와 꽃과 나물을 다 받아먹는다

맑은 샘물과 구름 그림자와 산뽕나무와 으름덩굴을 다 받아먹는다

서울 백반집에 마주 앉아 밥을 먹을 때 그는 골짜기를 다 데려와

오물오물 밥을 씹으며 참 아름다운 입가를 골짜기를 나에게 보여준다

 

문태준, 가재미, 문학과지성사. 2006년 2쇄.18쪽.

늙음.

 

이 시 '노모'처럼 아름다운 골짜기를 지닌 사람. 그런 선배를 만나고 싶다. 나도 그런 선배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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