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 띄우는 편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조은평.강지은 옮김 / 동녘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바우만은 유동하는 근대에서 44개의 편지를 띄웠다. 그리고 그 편지는 내게 닿았다.

 

44편 모두가 마음으로 파고들면서,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 '고독'을 찾게 하였고, 그래서 바우만이 '수용하는 그 행위는 반항을 만들어낸다. 만약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적어도 그때 가장 그럴듯한 결과는 바로 반항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388쪽)'라고 했듯이, '고독'을 깨닫는 순간 '고독'하게 만든 사회에 대하여 반항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바우만의 44편의 편지에 이어서 한 편의 편지를 띄운다. 

 

우리 역시 유동하는 근대에 살고 있으며, 고독을 잃어버리고 있고, 그래서 반항마저도 빼앗겨버린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오는 '공위시대'라는 말이 지금에 해당하는지도 모르겠다. 낡은 것은 사라져 가는데, 새로운 것은 오지 않은 시기로 말해질 수 있는 그런 '공위시대'

 

격변하는 현대사회에서 낡은 가치들은 무시되고 있으나, 새로운 가치는 등장하지 않고 있는 상황.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일. 그것이 바로 '반항하는 인간'이 되는 일.

 

어쩌면 바우만의 이런 책은 젊은이들이 읽어야 할지 모른다. 이 책은 과거를 이야기하지 않고, 현재를 분석하고 현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현재를 이야기하는 목적이 바로 미래를 만들어가는데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이념이나 가치에 사로잡혀 있는 소위 기성세대들보다는 미래를 살아갈 사람들은 젊은이들이 읽으면서 자신들의 행동을 만들어가는데 도움을 받으면 좋을 책이다.

 

그래서 45번째 편지는 이렇게 시작할 수 있다.

 

기존의 가치에 안주하지 마라. 눈은 앞을 보게 되어 있다. 앞을 보고 걸음을 걸어라.

 

대학의 죽음이 논의된 지 오래. 대학에서 학문 추구는 사라진 지 오래라는 말이 들린다. 대학은 오로지 취업의 한 관문으로서만 존재한다고... 취업과 관련이 없는 전공은 홀대당하고 있다고... 그리고 학생들도 전공과 관계없이 너도나도 영어 공부나 취직공부에만 전념하고 있다고.

 

이것은 바로 현재의 공포다. 취업 불안이 취업에 대한 공포로 나타나고 있다. 비정규직이 양산이 되고, 그나마 이러한 비정규직 일자리도 찾기 힘든 상황이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현재다. 그래서 이런 공포를 벗어나기 위해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을 한다.

 

소위 스펙을 쌓으려고 한다. 이것이 취업에 도움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너나없이 취업 준비 학원을 다닌다든지, 영어가 필수라고 영어 공부에 매달린다든지, 조금이라도 취업에 유리한 전공을 선택하려고 한다.

 

자신의 삶에 대하여 고민하지 않는다. 그렇게 고민할 시간도 없다. 오로지 달릴 뿐이다. 그런데 이 달림이 이상하다.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자꾸 제자리 걸음을 하던지, 아니면 거꾸로 달린다는 생각이 든다.

 

취업 공포. 이것은 기존의 가치다. 그리고 현재에 매몰되어 있는 모습에 불과하다. 취업을 하려고 하는 이유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다. 거창하게 자아실현이니 뭐니 하지만, 본질은 내가 살기 위해서 취업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치열하게 자리를 정해져 있으니,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즉 의자를 차지하기 위하여 치명적인 '의자놀이'를 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문제를 개인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그렇게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게 문제다.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경제학자 우석훈이 "88만원 세대"란 책에서 했던 말대로 '토플을 집어치우고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개인적인 해결책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눈을 앞으로 돌리자,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자. 그러면 이런 '의자놀이'가 우스워진다.

 

성경에서도 생계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또한 우리 말에서도 자기 먹을 것은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이 있다. 이만큼 생계는 사회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사회가 해결해야 할 일은 개인적으로 해결하려 한다. 이것이 바로 유동하는 근대, 액체 근대의 문제이다.

 

젊은이들도 이런 액체 근대 속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다른 가치를 보여주는 주장들이 있다.

 

전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생계를 보장해주는 제도를 만들자는 운동이 있다. 그러면 생계 걱정 때문에 창조적인 일에 도전하지 않았던 젊은이들이 생계 걱정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을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공위 시대. 새로운 가치를 주창하고 있다. 그런데 외면한다. 아직 이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꼭 '기본소득'이 아니더라도. 이들은 함께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잃었다. 바로 '고독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주범은 스마트폰, 참 스마트하게 쓰여야 하는데, 오히려 사람들에게서 고독을 뺏어가 버리고 말았다. 다른 말로 하면 생각할 시간을, 함께 하는 시간을 뺏어가버렸다는 말이다. 그래서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음에도 파편화된 경험밖에는 공유하지 못한다.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사용해야 한다. 수용해야 한다. 이제 스마트폰을 제거하기란 불가능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대를 수용한 다음, 그 다음을 생각해야 한다.

 

"집으로 가는 길"이란 영화에 보면 우리나라에는 네티즌이 있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지난 대선에서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댓글, 이런 스마트폰과 관련된 일 아니던가.

 

스마트폰은 사람들을 철저하게 개별화, 파편화시켰지만, 반대로 사람들을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체로 불러내는 역할도 한다.

 

즉, 스마트폰을 수용하고, 그 한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때 우리는 '반항하는 인간'이 될 수 있다.

 

이를 이용해서 '기본소득' 문제를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 공간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면 개인적으로 해결하려 했던 문제가 사회적으로 해결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 때 우리는 다른 세계로 한 발 도약할 수 있다. 이게 4번째 편지이다. 바우만의 논리를 내적으로 더 밀고나간 그런 편지.

 

이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지금은 이런 방법을 택할 수도 있지 않나 하는.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책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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