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류지향 - 배움을 흥정하는 아이들, 일에서 도피하는 청년들 성장 거부 세대에 대한 사회학적 통찰
우치다 타츠루 지음, 김경옥 옮김 / 민들레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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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타츠루. 요즘에 많이 읽고 있는 일본 학자다. 교육에 관한 책을 주로 읽고 있는데, 이 책에 세 번째 책이다.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는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장바구니에 담아 놓고, 늘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다시 장바구니에서 지우곤 했던 책이다.

 

"하류지향"이라는 제목에 '배움을 흥정하는 아이들, 일에서 도피하는 청년들'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책이라, 당연한 얘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빌려볼까, 사서 볼까 망설이고 있는 와중에, 이 책을 펴낸 "민들레"에서 오랫동안 정기 구독을 했다고 이 책을 보내주었다. 결국 이 책은 내게 올 책이었구나.

 

이렇듯 어떻게든 내 손에 들어오는 책이 있다. 인연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이 책은 내게 다가와 내 정신의 일부가 되었다.

 

책은 쉽게 읽힌다. 우치다의 책이 그렇듯이. 또한 읽으면서 '그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만큼 설득력이 있다는 얘기다. 교육 얘기라고 할 수 있지만, 사회 얘기하고 할 수 있고, 일본 얘기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얘기라고도 할 수 있다.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서 출간이 되었다고 판절이 된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을 민들레 출판사에서 다시 출간을 하였고, 서문에 그런 경위에 대한 우치다의 감상이 실려 있다.

 

처음에 잘 읽혔기에 판절이 되었을텐데, 몇 년 지나 다시 책이 나오게 된 이유는,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현실이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났기 때문일테고, 그러한 현실에 대한 분석이 타당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게다가 민들레 출판사는 계속해서 우리나라 교육에 관심을 보여온 출판사이니,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책은 우리 교육을 바꾸어가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판단을 내렸을리라.

 

'배움으로부터 도피하는 아이들'이라는 말을 사토 마나부 교수가 썼고, 사토 교수는 이러한 문제를 돌하하기 위하여 '배움의 공동체'를 시도하였고, 나름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고 본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배움의 공동체'가 소개되었고, 시도하고 있으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학교도 있으니 말이다.

 

사토 교수가 이렇듯 교육 실천에 주목하고 집중하고 있다면, 사토 교수로부터 '배움으로부터 도피하는 아이들'이라는 개념을 빌려온 우치다는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하는 원인 분석에 치중한다.

 

그 원인은 참으로 단순하다. 바로 "등가 교환"이다. 등가 교환은 자본주의의 기본으로, 즉, 화폐 경제를 유지시켜주는 근본 요소이다. 우치다는 이러한 등가 교환을 학생들이 어렸을 때부터 몸으로 익혔기 때문에 배움을 흥정하는 아이들이 탄생했다고 본다.

 

그거 배우면 뭐가 좋아요? 라는 질문은 그 물건이 왜 좋아요, 또는 그 물건이 어디에 좋아요? 라는 질문과 같다는 얘기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주니, 너도 나에게 그에 상응하는 무엇을 주어야 한다는 신념(그것은 신념이다)을 지니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배움이라는 '불쾌함'에 상응하는 교환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은 그렇지 않다. 이를 우치다는 교육의 역설이라고 하는데...

 

교육의 역설은 당사자가 교육이 제공하는 이익을 교육이 어느 정도 진행될 때까지, 경우에 따라서는 교육과정이 끝날 때까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런데 소비주체로 학교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애당초 그런 역설이 교육을 성립시키는 바탕이 된다는 사실을 모른다. (56쪽)

 

이러니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에게 '불쾌함'에 대한  등가는 수업 시간 내내가 아니라, 수업 시간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나머지는 등가 교환이 되지 않는 요소이기 때문에, 더 수업에 집중하면 자신이 손해를 보기 때문에, 학생들은 기를 쓰고 수업에 집중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한다고 한다.

 

어째, 많이 보이는 모습인데...이를 학생들이 의식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몸에, 마음에 이미 내면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무의식적인 노력, 그것이 바로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즉, 배움으로부터 도피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어른이 되면 일을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또 이러한 등가 교환에는 시간이 사라져 버린다고 하는데... 시간이 왜 중요하냐면 

 

지성이란 요컨대 나 자신을 시간의 흐름 속에 놓고 나의 변화를 고려하는 것이다. 이 말을 거꾸로 하면, '무지'의 정의도 가능하다. 무지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 자신 역시 변화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못하는 사고를 뜻한다. ... 공부로부터의 도피, 노동으로부터의 도피는 자신의 무지에 고착하는  욕망인 것이다. (156쪽)

 

이렇게 시간을 고려하다보면 '등가 교환'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등가 교환을 포기하는 순간 배움이 일어난다. 왜냐하면 미지의 것에 대한 추구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자신의 인생을 거는 모험이다. 이러한 모험을 떠나기 위해서는 스승이 필요하고, 스승은 단지 기술을 전수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사회에 연결해주고, 나를 과거와 미래로 연결시켜주는 고리로 존재하게 하는 그러한 존재라고 한다.

 

스승이 필요함을 인식하는 순간, 배움에서 도피할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스승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도 스승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은 시간 속에서만 가능하고, 또 '부등가 교환'에서만 가능하게 된다.

 

그러한 '부등가 교환'을 추구하기 시작하면 지금처럼 공부, 일에서 도피하는 사람들은 줄어들 수 있다. 다른 모습의 인간이 출현할 수 있다. 사회가 변하고,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로 변모되기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류 지향'을 멈추고, 이제는 '상류 지향'을 할 수 있게 된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치다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겠는가?

 

고착된 사회에서 그래도 노력하는 사람이 상류를 지향할 수 있고, 상류에 도달할 수 있다고 우치다는 말하고 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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