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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세기의 여름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평점 :
타임캡슐을 연상시키는 제목이다. 이런 제목으로 책을 쓰다니, 단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이기 때문일까 하는 생각을 했으나, 꼭 그렇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이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이기 때문에 쓰인 책이라면, 앞으로 해마다 이런 종류의 책이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100년 전은 언제나 있다. 그리고 사건은 언제나 있고,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지금까지는.
그렇다면 세기의 여름이다. 단지 여름을 이야기하는 책도 아닌데... '세기의'라는 말에 지중을 하면, 1900년대를 이루고 있는 년도 중에서 가장 뜨거운 해가 바로 1913년이라는 얘기가 된다. 여름은 계절 중에서 가장 뜨거운 계절이고, 사람들이 자신을 외부에 가장 잘 드러내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왜 1913년이 '세기의 여름'이 될까? 의문은 여기서 시작된다.
단순하게 생각하자. 인류의 역사에서 제일 먼저 큰 파국을 겪게 되는 1차 세계대전이 바로 다음 해에 일어난다. 즉, 1913년은 세계대전으로 달려가는 정점에 서 있는 해라는 뜻이기도 하다.
너무도 뜨거운 인간의 인간상실. 그것이 바로 전쟁이고, 이것이 국지전의 형태가 아닌 세계 전면전의 형태를 띠게 된 것이 바로 1차 세계대전이니, 1913년은 너무도 뜨거워서 곧 터져버릴 듯한 그런 해가 되는 것이다.
말 그대로 '세기의 여름'이 된다.
그렇다고 이 책은 정치사를 다루고 있는 책도 아니다.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도 아니다. 그냥 1913년을 보여주고 있다. 그 해에 일어난 각종 일들을. 현재의 역사와 연결지어서.
따라서 이 책은 몽타쥬 기법을 잘 살린 책이 된다. 온갖 이야기들이 중첩되어 나타난다. 그런 중첩 속에서 우리는 1913년을 재구성해낼 수 있다.
전쟁 위협에 대한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더라도, 당시 군주들의 사냥 모습에서 전쟁의 냄새를 맡을 수 있으며, 시대의 흐름을 가장 잘 읽어내는, 몸으로 감지해내는 예술가들의 삶에서 그런 우울, 불안을 읽어낼 수 있다.
아주 세세하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인물들의 행적이 소개되고 있다. 단지 그들이 1913년에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그 속에서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또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 아슬아슬하게 비켜가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으니,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책이 된다.
1913년 1월에, 사실 1월에 없어지지도 않았는데...모나리자가 실종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12월에 다시 모나리자를 찾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모나리자의 실종과 발견. 이것이 1913년 일반인들을 강타한 사건이라면,,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청기사파','다리파', '입체파' 등의 미술 사조들이 나오고, 그들의 내면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지 못하던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으며, 문학인으로서는 조이스, 카프카, 무질, 토마스 만, 헤르만 헤세, 릴케 등이 나오고, 음악가로도 많은 사람이 나오는데...
정말 백화점이다. 유럽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사람은 모두 다 한 번 쯤은 얼굴을 내밀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정말로 세기의 여름에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과거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지금 현재의 입장에서 판단하는 것도 의미있는 읽기가 된다.
우리는 지금 2013년이 1913년과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 역시 그 시대를 살았던 그 사람들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누구는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고, 누구는 근거 없는 희망에 차 있으며, 누구는 남들이 하지 못하는 실험을 하고 있고, 누구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남을 비방하고 있으며, 누구는 앞날을 예측하지 못해 외부로 탈출하려 하고 있는 그런 상태.
과거가 현재를 비추어주는 거울이라면, 다음 해 전쟁이라는 큰 재앙이 닥칠 그 직전 해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맞이할 2014년을 대비할 수 있지 않을까.
먼 훗날 적어도 2013년을 '세기의 여름'이라고 지칭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이 아니라, 바로 내일, 더 잘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한 거울 역할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친숙한 이름들이 이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하게 해주고 있으며, 이들 생활을 엿보는 듯한 느낌을 지니게 되는 그러한 감정도 갖게 만드는 책이다.
1913년을 만화경처럼, 파노라마처럼 표현해 낸 책이기에, 읽기에 전혀 지루하지 않다.
1914년 앞의 1913년이 '세기의 여름'이 되었는데, 우리는 2013년이 2014년으로 인해 '세기의 여름'이 되지 않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