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사이에 제대로 된 소통이 있을까.

 

아니 자신에게서도 자신과 자신이 제대로 소통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이미 언어로 나오는 순간, 그 언어는 본질에서 미끄러지기 시작하지 않을까.

 

언어의 미끄러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어를 통하지 않고는 자신을 표현할 수가 없다.

 

몸짓이나 표정이나 의상 등을 통하여 표현한다고 해도, 이는 언어보다 더한 미끄러짐을 동반할 뿐이고,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면 상대방은 어떤 뜻인지 이해하지도 못할 뿐더러, 서로에게 오해만 쌓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일도 역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자신을 온전히 상대에게 드러내 보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온전히 드러낸다고 생각했는데도, 이미 나를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미끄러짐이 일어나고, 이 미끄러짐이 상대에게 도달하기까지 또 미끄러지고, 상대에게 도달해서도 또 미끌어진다.

 

미끌어짐의 연속. 

 

이러니 소통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또 소통을 하기 위해서 우리가 얼마나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있다.

 

이러한 미끄러짐, 또는 소통을 위한 노력, 그러나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우리 인간의 존재. 그러한 내용들이 이 시집에 들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시 속에서 만남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심지어 자신조차도 자신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자꾸만 미끄러지고 있다. 미끄러짐에도 만남을 유지하고 싶은 욕구는 있고. 그 만남이 서로에게 힘이 되기보다는 서로를 갉아먹는 그런 상태가 되기도 하고.

 

이게 우리 인간이 서로서로 맺고 있는 관계인가 싶기도 하고, 잘못하면 그러한 관계밖에는 유지하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시들인데...

 

소통의 부재. 우리가 겪고 있는 큰 문제 아닐까.

 

                                    2인3각 경기

 

나의 하루는 / 너의 하루와 달라 / 나의 스텝은 / 너의 스텝과 / 달라도 너무 달라

나의 문법과 / 너의 문법이 / 두 개의 행성만큼 / 멀듯이 / 내가 보는 태양은

너를 비추는 태양이 / 아닐지 몰라

그런데도 우린 / 두 다리 묶고 / 세 다리 되어 / 줄곧 뛰어야 하는군

두 걸음 나가면 / 세 걸음 주저앉는 꼴로 /저 반환점 돌아오기까지 / 우린 몇 번이나 더

고꾸라져야 하는 걸까 / 승자도 패자도 없는 이 경기 / 관중도 심판도 없이

내 발목에 사슬 묶고 / 내 안의 나와 벌이는 / 끝없는 / 2인 3각 경기

 

강기원,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 민음사. 2010년. 1판 5쇄. 70-71쪽

 

여기서 너는 나일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누구이던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이 둘이 하나로 묶여 있되, 완전히 결합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다리들만 묶여 있다는 데 있다. 그래서 자신의 의지로 가고자 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호흡을 맞추려고 하기도 한다. 상대에게 완전히 다가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상대에게서 벗어나지도 못하는 상태.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모습 아니던가.

 

하여 나도 나 자신과 2인3각 경기를 하고 있으며, 또한 다른 사람들과도 2인3각 경기를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

 

이 생각을 밀고 나가면 상대에게 완전함을 바라서는 안되고, 또한 내 뜻대로 상대가 움직여주길 바라서도 안되고, 나와 상대의 상태를 파악하고, 맞추어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그것이 바로 소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조금의 미끄러짐은 2인3각 경기를 계속 할 수 있게 해주나, 심한 미끄러짐은 서로를 넘어지게 만들 뿐이라는 사실.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일

 

접붙이기를 하자 / 산사나무에 사과나무 들이듯 / 귤 나무에 / 탱자 들이듯

당신 속에 나를 / 데칼코마니로 마주 보기 말고 / 간을 심장을 나누어 갖자

하나의 눈동자로  하늘을 보자 / 당신 날 외면하지 않는다면 / 상처에 상처를 맞대고

서로 멍드는 일 / 아니 /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일 / 그러나

맞물리지 않는 우리의 생장점 / 서로 부르지 않는 부름켜 / 살덩이가 썩어 가는 이종 이식

꼭 부둥켜 앉은채 / 무럭무럭 자라난다, 우리는 / 뇌 속의 종양처럼

 

강기원,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 민음사. 2010년. 1판 5쇄. 88쪽

 

하여 잘못된 관계맺기는 이렇듯 '뇌 속의 종양처럼' 우리들 사이에 자라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 그러나 관계가 꼭 이렇게만 될까. 아니다. 더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우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소통이, 삶이, 우리들이 살아갈 수가 있다.

 

'당신 날 외면하지 않는다면'이라고만 할 게 아니라, 나 역시 당신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은하가 은하를 관통한다는 사실은, 자신의 존재를 다른 존재에 온전히 맡길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즉 다른 사람의 삶과 내 삶이 떨어질 수 없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치명적인 인간의 운명이다.

 

이 운명이 행복한 삶으로 가기 위해서는 서로 미끄러져서는 안된다. 소통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이 시를 읽고 싶었다. 하여 '서로 부르지 않는 부름켜'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부르고, 서로가 서로를 관통하는, 약간의 미끄러짐은 있을지 모르나 함께 가야만 하는 '2인3각'경기처럼 함께 가야만 한다는 그런 마음으로 이 시를 읽다.

 

어쩌면 요즘 소통이 안되고 있다는 생각에 이 시집이 더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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