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대여점에 가다. 주말 나들이 계획은 없고, 집에서 영화나 볼까 해서.

 

무슨 영화를 골라야 하는지 늘 고민이 되지만, 무겁지 않은 영화를 고르려고 했는데, 요즘 세상도 어수선하고 무거운데, 영화까지 무거우면 마음이 더욱 무거워질 것 같아서 가볍고 코믹한 영화를 보려 했다.

 

그런데 참 영화 고르기 힘드네... 가볍고 코믹한 영화라고 하지만 잘못 골랐을 경우엔 이도 저도 아닌 영화로 오히려 짜증만 돋구고 마는 경우도 있으니, 이것 골랐다 저것 골랐다 하다, 에이, 기준을 바꾸자... 그래도 천만 명이 넘게 본 영화인데, 극장에서 보지 않아도, 집에서라도 보아주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광해"를 골랐다.

 

"광해"에 대해서야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영화는 픽션이라 사실과 다르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픽션에 사실이 더해져야 영화의 흥미와 완성도가 높아지니, 어느 정도 다루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또 많은 사람들을 영화관으로 끌어들였다면 무언가가 있다는 얘기라는 생각에, 골라서 집으로 오다.

 

진지함과 코믹이 합쳐진 영화, 사실과 허구가 합쳐진 영화. 그렇지만 생각거리가 많은 영화.

 

광해군.

 

조선시대 임금 중에서 "조"나 "종"을 달지 못하고 "군"자를 결국 떼지 못한 두 명의 왕 가운데 하나.

 

이 중에 연산군이야 평가가 엇갈릴 일이 별로 없는데, 광해군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리고 있으니.

 

아마도 그 당시에도 그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렸으리라.

 

언제부터인가 광해군을 폭군이 아닌 뛰어난 외교실력을 지닌 왕으로 이야기하는 글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의 외교를 등거리 외교라고 이름하기도 했다.

 

그만큼 그는 전쟁의 비참함을 알고 있었고,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했다는 얘기가 성립한다.

 

그럼에도 "구국지은(求國之恩)"이라는 이름으로 명나라에 대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집권세력들은 그의 외교정책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대의 예... 큰 나라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 어쩌면 떠오르는 나라였던 청나라가 만주족이었기 때문에 더 반발이 심했을지도 모른다. 자기들은 작은 중국이라고 '소중화(小中華)'라고 일컫던 사대부들이었으니 말이다.

 

하여 그들은 광해를 죽도록 미워하게 된다. 그의 개혁 정책도 정책이지만, 개혁 정책에는 무어라 반기를 들 명분이 없으니, 친명반청으로 무장된 그들에게 친청 정책을 펴는 광해는 제거할 수 있는 명분을 준 왕일 수밖에 없었다.

 

영화에서야 가짜 왕을 등장시켜 할 말을 다하게 하지만, 실질적으로 광해는 자신의 할 말을 다하지 못했으리라.

 

그의 주변에 그를 믿고 따르는 현명한 신하가 없었으며, 또한 있었다고 해도 광해 자신이 그에게 많은 권한을 주어 개혁 정책을 펴게 할 수 있었는지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허균이 그의 측근으로 나오지만, 허균 역시 당시에는 힘을 쓰지 못한 존재에 불과했으니, 주나라 초기 주공과 같은 현명한 신하가 없다는 불행이 광해에게 닥친 불행이고, 조선에게 닥친 불행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는 집권세력은 대외 관계의 변화에는 관심이 없다. 또 백성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자신들의 이익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자신들을 지지해주는 명나라는 은혜로운 나라일 뿐이다. 그 나라가 망해가든 말든 그건 상관할 일이 아니다.

 

무언가 짚히는 것이 있지 않은가. 역사는 단지 과거의 일일 뿐인가. 아니다. 역사는 지금을 읽을 수 있는 거울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지 않는가.

 

영화 "광해"를 보면서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살필 수 있지 않나...아니 살펴야 하지 않나. 광해가 집권했던 그 시대의 모습과 지금, 비슷하지 않나. 우리는 이미 하나의 참고자료를 가지고 있으니,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는 말을, 더 나은 모습을 우리가 지닐 수 있다는 말로 바꿀 수 있는 시기이지 않나 싶다.

 

영화만으로 부족하다면 책을 읽어도 좋을 일.

 

한명기의 "광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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