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민음의 시 119
문정희 지음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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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시를 읽으며 어쩌면 시인은 시를 참 쉽게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시를 쉽게 썼다는 말이 그냥 되는대로 고민도 없이 시를 썼다는 말이 아니라, 이미 시인의 삶이 시로 영글어져 나온다는 말이다.

 

그냥 자연스레 물이 넘치듯이 시가 넘쳐나지 않을까...

 

문정희 시인은 그렇게 시를 쓰지 않을까.

 

그래서 그의 삶은 바로 시가 되고, 시가 또 그의 삶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읽기에도 부담이 없는데, 시 하나하나에서 삶의 의미를 찾게도 되니... 시인이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예전에는 시집의 제목은 시집에 수록된 시 중에서 시인이 가장 대표할 만한 작품으로 고른다고 생각을 했었다.

 

대부분 시집은 그렇게 제목이 붙기도 했고, 그런데, 문정희 시인의 시집 중에는 대표시가 아니라, 그의 시 구절 중 하나를 제목으로 택한 경우가 있었다.

 

처음에 시집을 사고 제목인 시를 찾았는데, 없었다. 그래서 이게 뭐지 하고 시집의 제목을 찾았는데,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시집에 수록된 시들을 하나하나 다 읽는 것이다.

 

읽다가 시집 제목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 왜 이 제목을 붙였을까 고민도 하고.

 

이번 제목은 이 시집에서 "다시 알몸에게"라는 시의 끝구절에서 따왔다.

 

'그래도 그냥 너는 알몸을 살아라 / 책상보다 침대에서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싱싱하게

나의 방앗간, 나의 예배당이여'

 

알몸이란 날것 그대로의 자신 아니던가. 가식적이지 않은, 꾸미지 않은 바로 자신의 본래 모습. 그것이 알몸 아니던가.

 

하여 시인은 나이를 먹어가도 자신의 본질을 잃지 않기를 바라고 있지 않은가. 여기에 꽃을 꽂은 순수한 모습을 지키기를 바라지 않은가.

 

이번 시집에서는 두 개의 시가 마음 속에 남아 있다.

 

'찬밥'과 '동백'

 

찬밥

 

아픈 몸 일으켜 혼자 찬밥을 먹는다 / 찬밥 속에 서릿발이 목을 쑤신다

부엌에는 각종 전기 제품이 있어 / 일 분만 단추를 눌러도 따끈한 밥이 되는 세상

찬밥을 먹기도 쉽지 않지만 / 오늘 혼자 찬밥을 먹는다

가족에겐 따스한 밥 지어 먹이고 / 찬밥을 먹던 사람

이 빠진 그릇에 찬밥 훑어 / 누가 남긴 무 조각에 생선 가시를 핥고

몸에서는 제일 따스한 사랑을 뿜던 그녀 / 깊은 밤에도

혼자 달그락거리던 그 손이 그리워 / 나 오늘 아픈 몸 일으켜 찬밥을 먹는다

집집마다 신을 보낼 수 없어 / 신 대신 보냈다는 설도 있지만

홀로 먹는 찬밥 속에서 그녀를 만난다 / 나 오늘 / 세상의 찬밥이 되어

 

문정희,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민음사, 2004. 44쪽

 

 

 

동백

 

지상에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뜨거운 술에 붉은 독약 타서 마시고

천 길 절벽 위로 뛰어내리는 사랑

가장 눈부신 꽃은

가장 눈부신 소멸의 다른 이름이라

 

문정희,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민음사, 2004. 70쪽

 

세상의 어머니들의 모습에서 신을 발견해내는 시인의 눈. 그리고 화창한 봄날, 소멸을 향해 가는 동백의 아름다움. 그를 표현한 시.

 

봄날, 시를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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